항목 ID | GC08100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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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정의]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주거 공간 및 주거와 관련된 생활 관습.
[개설]
대구분지의 남동쪽에 위치한 경산 지역은 평야가 많고 땅이 비옥해 선사시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저명한 인물이나 집성촌이 많지 않아 전통 가옥이나 전통 마을이 두드러지게 형성되지는 않았다. 경산은 지리적으로 대구광역시와 인접하여 과거부터 행정적, 문화적으로 대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산업화 이후 대구의 도시 확장에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대구에서 공장과 대학이 이전해오고, 1980년대 이후 부터는 대구의 베드타운으로 아파트가 대거 들어섰다.
[경산 지역의 전통 가옥]
경산 지역의 전통 가옥의 구조는 경상도, 전라도 일대에 분포하는 남부지방형에 해당한다. 남부지방형의 가옥은 부엌, 방, 대청, 방이 一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경산 지역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주택 안채의 경우에는 부엌, 방, 마루, 방의 一자형으로 지어졌고, 경우에 따라서 사랑채나 부속채가 연결되어 口자형을 이루기도 하였다. 일반 서민들이 거주하는 대다수의 농촌 지역 가옥은 마루가 없이 부엌, 방, 방으로 이루어졌다.
경산에는 고택이나 전통마을이 많지 않지만, 고택을 꼽자면 난포고택이 대표적이다. 난포고택은 전라도사와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난포 최철견이 1546년(명종 1)에 건립하였다. 『난포공실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에도 병화를 입지 않았다고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양식이나 기법 등으로 미루어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으로 추정되며 가경 14년(1809)명의 막새기와와 1817년(순조16)의 상량문이 있어 두차례 중수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정침·아랫사랑·중사랑·방아실·행랑채와 마루 그리고 사당 등이 고루 갖추어진 집이었으나, 지금은 정침·행랑채·사당만 남아있다. 정침은 앞면 7칸·옆면 1칸 반의 규모로 ㅡ자형이며 지붕이 특이하다. 가운데 5칸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하고, 양쪽 1칸씩은 눈썹지붕을 덧달아서 팔작지붕처럼 만들었다. 또한 대청은 문을 달아 막았으며, 뒤쪽에는 다락을 설치하여 방과 이어지도록 하였다. 부속건물은 앞면 4칸·옆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현대 경산 지역의 주거]
경산은 대도시인 대구광역시와 인접해 있으며, 특히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경산시가지는 바로 이어져 있어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1980년대부터 경산시 동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건설이 이루어졌다. 대구보다 지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산에 아파트가 들어섬에 따라 대구 지역 주민들의 전입이 이루어져 경산시의 인구도 증가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옥곡지구, 압량읍 신대부적지구, 중산지구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2020년대 들어서는 대구지하철 2호선 임당역 일대 97,415.4㎡에 임당역역세권 개발사업이 이루어져 임당동, 대평동 일대의 농경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 기준 경산시 전체 가구수 141,988호 중 아파트가 63,957호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 개발 정책 속에서 경산 지역은 전통적인 형태의 가옥이 상당수 사라지고 아파트가 거주 방식의 주를 이루게 되었다.
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일대학교 등 대학교와 산업단지가 다수 위치한 경산 지역에는 대학생, 독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원룸이 상당수 형성되어 있다. 특히 영남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근에는 원룸과 상업시설이 집중되어 원룸촌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경산 지역에 아파트와 원룸이 집중된 것은 대도시와 인접한 베드타운, 대학도시로서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옛 시가지 외곽 지역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 원룸이 들어서는 한편 경산의 옛 중심지에 해당하는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도시재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산의 옛 중심지였던 서상동 일대에는 관공서와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었지만 도심 기능이 쇠퇴하여 빈집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서상동 일대는 2010년대부터 도시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