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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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賢興里- |
영어공식명칭 | Menhir of Hyeonheung-ri |
이칭/별칭 | 현흥리 입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대학로 624[현흥리 653-3]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강재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현흥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개설]
현흥리 선돌은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현흥초등학교 내에 있는 청동기 시대 신앙 및 의례 유적이다. 원래 2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건립 경위]
현흥리 선돌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현흥리 일대에 거주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에 의해 신앙의 대상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현흥리 선돌은 현흥초등학교 내, 학교 구 건물 중앙 현관 뒤편의 큰 나무 아래에 있다. 선돌이 자리한 현흥리는 남쪽 오목천과 북쪽 금호강 사이의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형성된 동리이다.
[형태]
현흥리 선돌의 형태는 기다란 장대석 형태이다. 모서리에는 선돌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돌을 떼어낸 흔적이 보인다. 선돌의 남쪽 면에 세로 방향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마을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이후 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건국 이념을 심어주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선돌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크기는 높이 205㎝, 너비 50㎝, 두께 40㎝ 정도이다.
[현황]
현흥리 선돌은 현재 1기만 남아 있지만,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원래 2기의 선돌이 현흥리에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나머지 1기를 개울의 제방 초석으로 묻어버렸다고 하는데, 묻은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 현흥리 선돌은 현흥초등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선돌 옆에 안내 표지판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별도의 보호 시설은 설치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현흥리 선돌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정동·평산동의 선돌과 더불어 초기 국가 성립 이전 경산 지역의 문화상을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