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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20
한자 大王山 烽燧-
영어공식명칭 Daewang-Mountain' Fire Signal Remain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흥정리 산11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장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대왕산 봉수터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흥정리 산11 지도보기
성격 봉수터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흥정리에 있는 시대 미상 봉수터.

[개설]

대왕산 봉수터는 시대 미상의 봉수 유적이다. 봉수 제도는 횃불과 연기로 국경 지방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던 일종의 통신 제도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낸 것으로, 역마나 인편보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전근대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 방법이었다.

봉수가 행해진 것은 일찍이 삼국 시대부터였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된 것은 고려 후기다. 조선의 봉수제는 고려의 제도를 토대로 정비되었으며, 신속성을 바탕으로 지방의 급변하는 민정이나 국경 상황을 상급 기관인 중앙의 병조에 연락하였다. 즉,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 기능을 목적으로 설치 활용된 통신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봉수제는 파발·역참 제도와 병행되면서 치폐(置廢)를 거듭하다가 1894년(고종 31) 현대적인 전화 통신 체제로 전환하였다.

조선 시대 문헌상 경산 지역에 설치된 봉수는 경산현의 성산봉수(城山烽燧)[대구광역시 수성구 소재]와 하양현시산봉수(匙山烽燧) 2곳뿐이다. 이외에 대왕산 봉수터덕천리 봉수터가 현재 경산시 행정 구역 안에 있지만, 문헌상 확인되지는 않는다.

[변천]

대왕산 봉수터에 관한 전통 시대 문헌 자료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아 내력을 밝히기 어렵다.

[위치]

대왕산 봉수터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흥정리평기리에 걸쳐 있는 대왕산(大王山) 정상에 있다. 북서쪽 능선은 완만하지만, 다른 사면은 급한 경사를 이룬다. 경산시 남산면에서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왕산 봉수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현황]

대왕산 봉수터에는 외부를 석축하고 내부를 흑으로 채운 높이 1m, 폭 1m, 둘레 50m 정도의 방화장(防火墻)이 있는데, 북쪽으로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방화장 내부에 봉화대 구조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있다.

[의의와 평가]

대왕산 봉수터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문헌상 확인되지는 않지만, 지리적 위치상 중요하게 활용한 봉수대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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