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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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 河陽 育英齋 |
영어공식명칭 | Yugyeongjae Village School in Hayang, Gyeongsan |
이칭/별칭 | 육영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 39-19[동서리 44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823년 - 경산 하양 육영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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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5년 - 경산 하양 육영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7년 - 경산 하양 육영재 중수 및 모성재로 개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2년 - 모성재에서 경산 하양 육영재로 개칭 및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6년 - 경산 하양 육영재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0년 7월 13일 - 경산 하양 육영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79호 지정 |
현 소재지 | 경산 하양 육영재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 39-19[동서리 440] |
원소재지 | 경산 하양 육영재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 39-19[동서리 440] |
성격 | 서당 |
양식 | 목조 맞배지붕[대문]|목조 맞배지붕[본당]|목조 맞배지방[관리사] |
정면 칸수 | 1칸[대문]|5칸[본당]|3칸[관리사] |
측면 칸수 | 1칸[대문]|1.5칸[본당]|1칸[관리사] |
소유자 | 육영재 |
관리자 | 육영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제179호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동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방 교육 기관.
[개설]
경산 하양 육영재(慶山河陽育英齋)는 1823년(순조 23) 하양현(河陽縣)의 인재 양성을 위해 건립된 지방 교육 기관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전국 각지에 건립된 새로운 유형의 교육 기관으로, 건립 및 운영에 있어 하양현의 영향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양 지역 양반층을 중심으로 민간이 주도한 사실이 엿보인다.
[위치]
하양여자중학교에서 지방도 제919호 경산시 하양읍 금송로를 따라 남쪽으로 800m 가량 이동하면 우측에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의 표지석이 나타난다. 표지석이 가리키는 쪽으로 다시 400m 가량 이동하면, ‘경산 하양 육영재’ 안내판이 나오며, 안내판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지점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경산 하양 육영재가 위치해 있다.
[변천]
경산 하양 육영재는 하양 지역의 선비들을 교육하기 위해 1823년(순조 23) 당시 하양현감(河陽縣監) 이태승(李台升)이 허장(許樟)·김이덕(金履德)·채석이(蔡碩履) 등 하양현의 사족들과 함께 건립하였다. 건물은 환성사(環城寺)의 안양실(安養室)을 이건 및 활용하였으며, 건립 비용은 원납금과 사족들의 부조로 마련되었다.
1905년(광무 9)에 하양군수(河陽郡守) 윤규선(尹奎善)과 훈장 이상규(李祥奎) 등이 건물을 중수하였으며, 1907년에는 ‘육영재’를 ‘모성재(慕聖齋)’로 편액하고, 훈장의 명칭도 ‘재장(齋長)’으로 개정하였다. 1922년에 한 차례 더 중수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재장을 훈장으로 환원하고, 명칭을 ‘육영재’로 개칭하였다. 당시 재임(齋任)은 훈장 1인, 유사(有司) 2인 체제였다.
[형태]
경산 하양 육영재는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의 남산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육영재가 있고, 왼쪽에 관리사가 있다. 육영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중앙의 2칸 규모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의 온돌방, 오른쪽에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에만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가구는 대량 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3량가의 구조이다. 관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왜식(倭式) 기와를 얹었다.
[현황]
경산 하양 육영재는 2020년 7월 13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었다. 내부에는 1823년에 하양현감 이태승이 쓴 「육영재기」와 이용관(李用觀)이 쓴 「육영재상량문」, 1905년에 황재찬(黃在瓚)이 쓴 「육영재중수기」, 1907년에 하양군수 송헌면(宋憲冕)이 쓴 「모성재기」, 1922년에 김상룡(金象龍)이 쓴 「육영재중수기」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 하양 육영재는 조선 후기 하양현의 인재 양성 및 교육을 위해 건립된 양사재(養士齋)이다. 육영재와 같은 조선 후기 지방 교육 기관이 보존되어 있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으며, 운영 실태 등 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어 역사학뿐만 아니라 교육사와 사회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