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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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智齋 |
영어공식명칭 | Injijae House |
이칭/별칭 | 인지정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길14길 19[원당리 37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건립 시기/일시 | 1579년 - 인지정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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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10년 - 인지재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울옥리에서 원당리로 이건 |
현 소재지 | 인지재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길14길 19[원당리 378] |
원소재지 | 인지정사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울옥리 |
성격 | 재사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영천 최씨 문중 |
관리자 | 영천 최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재사.
[개설]
인지재(仁智齋)는 1579년(선조 12)에 ‘인지정사(仁智精舍)’라는 이름으로 처음 건립되었으며, 최문병(崔文炳)[1557~1599]의 강학처였다. 최문병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일장(日章), 호는 성재(省齋)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인 지역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하양·영천·청도 등지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감목관(監牧官)을 지냈으며, 한성우윤(漢城右尹)에 증직되었다. 문집으로 『성재실기(省齋實記)』가 전한다.
[위치]
경산시 자인면 자인교차로에서 국도 제69호를 따라 남쪽의 경상북도 청도군 방면으로 2.9㎞ 가량 이동하면 원당교차로가 나온다. 오른쪽의 원당길을 따라 약 200m 이동하여 나오는 원당리회관에서 서쪽으로 100m 떨어진 지점에 인지재가 위치해 있다.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는 최문병의 영천 최씨 문중이 세거하는 마을이다.
[변천]
인지재의 전신인 인지정사는 1579년에 최문병이 자인현(慈仁縣) 울곡리(蔚谷里)[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울옥리]에 처음 건립하였다. 이곳에서 최문병은 여러 친우들과 교유하였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에는 최문병 휘하의 의병들이 집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최문병 사후 인지정사는 인지재로 변모하였으며, 1710년경(숙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로 이건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최문병을 제향하는 용계서원(龍溪書院)이 훼철되자, 한동안 사우 역할을 담당하였다. 1979년에 용계서원이 복원되면서 인지재의 제향 기능이 중단되었으며, 이후 건물이 크게 퇴락하였다.
[형태]
인지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왼쪽에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오른쪽에 1칸의 대청을 연접시켰다.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대량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량을 받게하고, 종량 위에는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한 5량가 구조이다.
[현황]
인지재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영천 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건물이 크게 퇴락하였으며, 별도의 보호 및 안내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인지재는 조선 시대 강학 및 추모 시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최문병 부대의 집결처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큰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