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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지방지도』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98
한자 一八七二年地方地圖慶山縣河陽縣慈仁縣地圖
영어공식명칭 『In 1872, Region Map』「Gyeongsan-hyun·Hayang-hyun·Jain-hyun Ma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정의]

1872년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의 지도.

[개설]

『1872년 지방지도(地方地圖)』는 흥선대원군의 개혁 추진과 함께 외세의 침략에 응대하기 위해 국가에서 제작한 전국 군현 단위의 지도다. 1872년(고종 9)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각지의 지도를 제작해 올리게 한 것으로 총 459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3개월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으로 인해 지도의 전체적인 통일성이 부족하고 체계적이지 않다. 반면에 군사적인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營)과 진보(鎭堡), 성곽(城郭), 역(驛), 파발(擺撥) 등의 군사(軍事)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9세기 말 문란한 조선의 내정을 바로 잡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여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려 한 흥선대원군에 의지에 따라 제작되었다. 각종 개혁 정책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지방 군현의 행정과 민심 등의 현황 파악이 중요했다. 또한 이양선의 출몰로 인해 서구 세력의 무력 침입을 받는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도 요구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지도의 제작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물이 1872년에 간행된 지방 지도다.

[형태]

『1872년 지방지도』는 회화(繪畫)로 그려진 채색지도이다. 각 매의 지도에는 군현의 지도가 그려져 있으나 크기는 가로 70~90㎝, 세로 1.0~1.2m 등으로 규격이 불일치하다.

[구성/내용]

『1872년 지방지도』는 1872년 전국의 군현 및 군사 진지(陣地)를 대상으로 작성하여 총 459매의 지도이다. 이 가운데 경상도 편은 106매인데, 그 속에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경산현지도」는 남쪽이 상단으로 반전(反轉)되어 그려졌다. 경산의 읍성은 방형(方形)의 범례로 성가퀴가 보이게 그러졌다. 성 안에는 읍치와 객사 그리고 4개의 성문이 문 모양의 그림으로 나타냈고 가운데 장시(場市)를 글자로 표기했다. 이밖에 경산현에 존재했던 사직단(社稷壇)과 각종 사찰 및 암자와 사창(社倉) 등도 문 모양의 회화로 그렸다. 여제단(厲祭壇)과 성황단(城隍壇)은 흑색 바탕의 방형으로 그렸고 봉대(烽臺)는 적색 바탕의 태양(太陽) 모양으로 표시했다. 본 지도에서 행정 구역은 면(面)과 리(里)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 서, 남, 북면의 명칭이 해당 위치에 글자로 자리해 있고 리도 가천리(佳川里), 내곡리(內谷里), 대동리(大洞里), 마여리(馬余里), 사동리(祠洞里), 옥곡리(玉谷里), 중방리(中方里), 하도리(河圖里) 등 당시 경산현의 리가 글자로 망라되어 있다. 이는 지도의 제작 목적과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산지는 청색 바탕으로 연맥(連脈)의 형태로 그리지 않고 독립적인 봉우리 모습으로 형상화하였고 하천도 청색 선으로 그렸으나 둘 다 명칭은 생략됐다. 경산현의 지도는 산 모양 등이 난잡하게 그러져 하양현자인현의 지도와 비교해 볼 때 회화의 미적 감각이 다소 떨어진다.

「하양현지도」는 남쪽이 우측을 기준으로 해서 그러졌다. 현 지도에서 중요한 특징은 주요 건축물의 회화 표현이다. 건물은 팔작 지붕 모양의 회화로 나타냈는데 특히 관아와 객사 및 향교, 사찰의 건물 배치가 자세하게 그려졌다. 따라서 지도를 통해 당시 하양현에 존재했던 주요 건축물의 모습을 일정 부분 유추할 수 있다. 산천은 회화로 표현되었고 산은 청색 바탕의 산등허리를 연접시켜 맥세(脈勢)를 강조한 형태의 전형적인 산도(山圖)의 기법이 사용됐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큰 물줄기로 나타내 읍치를 관통하고 있다. 도로는 관아에서 뻗어나가는 갈색 바탕의 실선으로 그러졌다. 행정 구역의 면은 누락되었지만 각 면에 존재했던 사창(社倉)이 그러져 있기에 면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으며 경산현 지도에 자세하게 파악했던 리가 하양현 지도에서는 생략되었다. 이는 지도의 제작 방법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제작자의 주관적인 의도가 들어갔기에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하양현의 지도에서 경계 부분인 남쪽은 자인과 경산에 맞닿아 있으며 북쪽은 대구와, 동쪽은 영천, 서쪽은 경산(慶山)의 북면(北面)이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의 형태로 마양면(磨陽面)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자인현지도」의 지도는 세 군현의 지도에서 산맥의 표현이 가장 뛰어나며 상세하다. 산맥은 청색 바탕의 회화로 표현하여 ‘∧’ 형 모양이 연결되어 그렸고 명칭도 구룡산(九龍山), 삼천산(三川山), 단산(簞山), 도천산(到天山), 삼성산(三聖山), 현성산(賢聖山) 등으로 각자의 위치에 그려 넣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선으로 나타내어 금호강(琴湖江)오목천(烏沐川) 등을 그려 넣었다. 지도에서 현의 동헌(東軒)과 객사 및 향교와 사찰, 사창 등은 집 모양의 회화로 그렸고 도로는 자색(紫色)의 바탕의 실선이 읍치를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행정 구역인 면은 생략되고 리(里)도 송림리(松林里)와 송대리(松臺里)만 기록되어 있어 지도의 전체적인 내용은 간략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1872년 지방지도』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지도」 는 조선 정부에서 제작한 마지막 관찬(官撰) 지도로 전국 단위로 제작됐기에 군현마다 지도의 생김새가 다르고 담긴 정보량도 특색(特色)적이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지역의 행정·경제·사회·군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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