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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17
한자 密陽 朴氏
영어공식명칭 Miryang Par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조선 초 - 밀양 박씨 박해 입향
본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입향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속초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언침
입향 시조 박해

[정의]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 박씨의 본관인 밀양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자리한 지역으로, 초기 국가 시대에 변한(弁韓)에 속하였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방 제도 개편 과정에서 밀주(密州)로 고쳤고[995년(성종 14)], 1390년(공양왕 2)에는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하다가 1895년(고종 32) 밀양군(密陽郡)으로 개칭하였다.

밀양 박씨의 원조(元祖)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이고, 시조는 박언침(朴彦枕)이다. 박언침은 박혁거세의 29세손이자 신라 제54대 국왕인 경명왕의 맏아들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박언침의 후손들이 밀양[밀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밀양 박씨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도평의사공파(都評議事公派)·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좌윤공파(左尹公派)·동정공파(同正公派)·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정국공파(靖國公派)·규정공파(糾正公派) 등 12개 파로 분파되었다. 또한, 10세손 박환(朴桓)이 영암 박씨로 분적하는 등 10여 개 본관으로 갈라졌다.

[입향 경위]

밀양 박씨는 경산 지역에 여러 차례에 걸쳐 들어와 단일한 입향조를 특정할 수 없다. 1909년에 쓰인 경산 지역 읍지인 『장산지(獐山誌)』 성씨 조에 의하면 대사헌을 지낸 박해(朴晐)가 조선 초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현재 기록상 가장 먼저 입향한 인물이다. 박해는 밀직부원군 박중미(朴中美)의 둘째 아들로, 호는 귀림(歸林)이고, 부인은 옥산 전씨이다. 1377년(우왕 3)에 문과에 급제한 뒤, 지한주사(知韓州事)와 대사헌을 지냈다. 공민왕 때 홍건적 모거경(毛居敬)이 서경을 침입하자 안우(安祐)와 함께 격퇴하였다. 마당에 못을 파고 고기를 길러 어버이를 봉양하였다는 일화도 전한다. 국사가 소란하자 청주에 은거하였다가 처가가 있는 경산 내매동[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효종 대에는 박찬과 사촌 박수가 현풍에서 경산으로 입향하였고, 숙종 대에는 박개한이 청도에서 입향하였다.

[현황]

밀양 박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경산 지역에 18,868명이 거주 중이다. 진량읍 속초리에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밀양 박씨 경산 입향조인 박해의 재실[솔일재(率一齋)]이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한우로얄아파트 뒤편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참고문헌]
  • 『경산군지』(경산군지편찬위원회, 1971)
  • 『장산지』(경산향교, 2015)
  •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 수성구 문화관광(http://www.suseong.kr)
  • 한국족보출판사(http://www.findro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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