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35 |
---|---|
한자 | 俠石里 草溪 鄭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개설 시기/일시 | 고려 말 - 협석리 초계 정씨 집성촌 형성 |
---|---|
현 소재지 | 협석리 초계 정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
성격 | 동성 마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에 있는 초계 정씨 집성촌.
[개설]
협석리 초계 정씨 집성촌은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을 본관으로 하는 초계 정씨의 동성 마을이다. 초계 정씨 시조인 정배걸(鄭倍傑)[?~1050]은 고려 문종 시기에 예부 상서·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르렀다. 협석리에 초계 정씨가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부터이다.
[명칭 유래]
초계 정씨 집성촌이 자리한 협석리는 원래 마을 앞에 10개의 바위가 있다는 이유로 ‘섭돌’, ‘섭돌리’, ‘석두리’라고 불렸다. 이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숲과 돌 사이에 마을이 이루어졌다 하여 ‘협석’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협석리 초계 정씨 집성촌은 고려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왕 때의 문신인 맹순(孟淳) 정연(鄭珚)[?~1375]이 지금의 경산시 사동 지역에 유배된 이후, 정연의 후손들이 협석리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초계 정씨는 달성 서씨, 아산 장씨, 청주 한씨 등과 함께 경산 지역의 4성으로 불린다.
[자연환경]
초계 정씨 집성촌이 자리한 협석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는 상자산, 서쪽에는 누룩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룩들’이라는 이름은 남천면에서 곡식이 가장 잘 자란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동신바우라고 불리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입향조인 정연이 심은 당나무도 있었다고 한다. 당나무는 동제를 없앨 때 베어버려 남아있지 않다.
[현황]
초계 정씨 집성촌이 자리한 협석리에는 1993년 당시 총 122호가 거주하였는데, 초계 정씨 가구는 52호였다. 2020년 현재 협석리의 가구는 150호, 인구는 282명인데, 1/3가량이 초계 정씨이다. 마을 주민들의 주 생업은 협석들과 누룩들 등에서 이루어지는 포도 재배이다. 인근에는 한국복지사이버대학과 영남외국어대학 등의 교육 기관이 있다.
한편, 마을에는 정연을 기리기 위해 마을 선비들이 뜻을 모아 세운 동산서당이 있다. 1813년(순조 13) 창건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1938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건되었다. 과거에는 정월대보름 자시에 동신바우와 당나무에 동제를 지냈으나, 1970년대경 마을 사람들이 미신이라 하여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