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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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上里 靑道 金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경산1일반산업단지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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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신상리 청도 김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 |
성격 | 동성 마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에 있었던 청도 김씨 집성촌.
[개설]
신상리 청도 김씨 집성촌은 경상북도 청도군을 본관으로 하는 청도 김씨의 동성 마을이다. 청도는 경상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본래 이서국(伊西國) 땅이었으나 유리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 이후 경덕왕 때 오야산현(烏也山縣)을 오구산현(烏丘山縣)으로, 경산현(驚山縣)을 형산현(荊山縣)으로, 솔이산현(率已山縣)을 소산현(蘇山縣)으로 고쳐 밀성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 세 지역을 합쳐 청도군이 되었다.
청도 김씨의 시조는 김지대(金之岱)[1190~1266]이다. 김지대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968]의 8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대는 고려 고종·원종 시기의 인물로, 1217년(고종 4)에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다. 1218년(고종 5) 문과에 급제하고 전주사록(全州司錄)에 임명되었다. 이후 보문각 교감, 전라도안찰사, 비서소감, 지공거, 추밀원 부사, 첨서추밀원사 등을 지냈다. 1258년(고종 45)에는 북변에 침입한 몽골군을 격퇴하고 민심을 잘 다스린 공으로 오산(鰲山)[경상북도 청도군의 옛 지명]에 봉하여졌다.
경산 지역에는 하양읍 남하리, 진량읍 신상리 등을 중심으로 청도 김씨가 세거하여 왔는데, 입향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명칭 유래]
청도 김씨 집성촌이 자리한 신상리에는 낙산, 내하, 솔못안, 신기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낙산은 낙산 밑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내하는 안골 아래에 있다는 의미이다. 솔못안은 솔목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이고, 신기는 솔못안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마을에 청도 김씨 집성촌이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신상리 청도 김씨 집성촌이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신상리는 1980년대까지 농촌 지역이었지만, 1991년부터 경산1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공장과 아파트가 밀집한 진량읍의 중심 지역으로 변화하였다.
[자연환경]
청도 김씨 집성촌이 자리한 신상리는 경산 시내의 북동쪽에 있다. 대부분의 지형은 평지와 낮은 구릉지이다. 신상리의 동쪽에는 용호산과 금박산이 있다.
[현황]
신상리 청도 김씨 집성촌은 경산1일반산업단지의 조성과 택지 개발로 인해 동성 마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청도 김씨 식송문중을 중심으로 문중 활동과 장학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