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43 |
---|---|
한자 | 谷蘭里 永川 崔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개설 시기/일시 | 조선 중기 - 곡란리 영천 최씨 집성촌 형성 |
---|---|
현 소재지 | 곡란리 영천 최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
성격 | 동성 마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에 있는 영천 최씨 집성촌.
[개설]
곡란리 영천 최씨 집성촌은 경상북도 영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영천 최씨의 동성 마을이다. 영천 최씨의 시조로 알려진 최한(崔漢)은 고려 의종·명종 대에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연산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봉하여졌다. 곡란리 입향조는 난포(蘭圃) 최철견(崔鐵堅)이다.
[명칭 유래]
영천 최씨 집성촌이 자리한 곡란리는 처음 골안, 고란 등으로 불리다가 ‘곡란’으로 고쳐졌다. 골안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고란은 보기 드문 난초가 저절로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영천 최씨 집성촌이 자리한 곡란리는 1320년(충숙왕 7) 무렵에 밀양 손씨가 처음으로 개척하였다고 한다. 손씨가 들어올 당시 마을에 자라던 소나무를 베면서 들어왔다는 전설도 있다. 이후 조선 중기에 청주부사(淸州府使)를 역임한 최철견이 영천으로부터 곡란리에 옮겨오면서 영천 최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자연환경]
영천 최씨 집성촌이 자리한 곡란리는 용성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곡란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남쪽에는 번답들이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용산지, 버들못, 가전지 등의 저수지가 분포하여 수원이 풍부하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골짜기에는 수령 167년의 느티나무가 있으며, 인근의 용산에는 기우제를 지냈던 무지개샘이라 불리는 샘이 있다.
[현황]
곡란리 영천 최씨 집성촌에는 1993년 당시 영천 최씨 21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2020년] 곡란리의 가구와 인구는 144호 268명인데, 영천 최씨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각성촌락[한 촌락 안에 여러 성씨가 모여 지연적 유대에 의해 결속되어 있는 마을]이 되었다. 곡란리 주민의 주 생업은 복숭아·포도·자두 등의 과수 농사이다.
곡란리의 영천 최씨 관련 유적으로는 난포고택(蘭圃古宅)과 용산서원(龍山書院) 등이 있다. 난포고택은 최철견이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용산서원은 임란 공신으로 알려진 죽은(竹隱) 최팔개(崔八凱)와 죽포(竹圃) 최팔원(崔八元)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의 느티나무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1999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