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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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誡 |
영어공식명칭 | Heo Gy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조선 전기 하양이 관향인 문신.
[개설]
허계(許誡)[?~1502]는 문과 급제 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밀양 부사(密陽府使)·형조 참의(刑曹參議)·경주 부윤(慶州府尹) 등을 지냈다.
[가계]
허계의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아버지는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지낸 허척(許倜), 어머니는 정언(正言)을 지낸 고안승(高安勝)의 딸 정부인(貞夫人) 고씨(高氏), 할아버지는 판도 판서(版圖判書)를 지낸 허귀룡(許貴龍), 증조할아버지는 도관 정랑(都官正郎)을 지낸 허윤창(許允昌)이며, 부인은 류빈(柳濱)의 딸 진주 류씨(晉州柳氏)와 김황(金璜)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활동 사항]
허계는 일찍이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474년(성종 5) 이산(理山)에 여진족이 침입하여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약탈해 가는 일이 일어나자 허계를 평안도 경차관(平安道敬差官)으로 파견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진상을 조사하게 하였다. 1475년(성종 6)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1483년(성종 14)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다. 1484년(성종 15) 승려를 사역시킨 후 도첩(度牒)을 주는 것이 부당한 일임을 아뢰었다. 1489년(성종 20)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된 후 불교의 폐단을 아뢰고 원각사(圓覺寺) 수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490년(성종 21) 밀양 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1492년(성종 23) 성종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 받았다. 1493년(성종 24) 형조 참의에 올랐고, 1494년(성종 25) 경주 부윤으로 부임하였다. 만년에는 관직을 버리고 풍덕(豐德)[지금의 북한 개성특별시]에 은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남효온(南孝溫)은 허계에 대하여 “참으로 기이한 선비로다. 인품이 너그럽고 선선하며 권세에 아부하지 아니하니, 허씨(許氏)의 유풍과 공렬(功烈)이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학문과 저술]
허계는 문장이 뛰어나 여러 비문을 썼으며, 비파를 잘 연주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허계는 밀양 부사 재임 중 선정을 베푼 일로 1502년(연산군 8) 추포(追褒)[사후에 공을 인정받아 포장(褒奬)받는 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