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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59
한자 薛聰
영어공식명칭 Seulchong
이칭/별칭 총지(聰智),홍유후(弘儒侯)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022년 - 설총 홍유후 추증
추모 시기/일시 1022년 - 설총 문묘 종사
추모 시기/일시 1623년 - 설총 서악서원 제향
추모 시기/일시 1864년 - 설총 도동단 제향
출생지 설총 출생지 - 경상북도 경주시
출생지 설총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설총 거주지 - 경상북도 경주시
거주|이주지 설총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여천동 지도보기
외가|처가 설총 외가 - 경상북도 경주시
묘소|단소 설총 묘소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423
묘소|단소 설총 단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3길 13-6[하대리 175-1]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설총 제향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2길 23[서악동 615]
사당|배향지 설총 제향지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3길 13-6[하대리 175-1]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경력 나마

[정의]

통일 신라 시대 경산 출신의 학자.

[개설]

설총(薛聰)은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손꼽힌다. 자(字)는 총지(聰智)이다. 할아버지는 담날(談捺) 나마(奈麻), 아버지는 원효(元曉), 어머니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딸인 요석궁(瑤石宮) 공주이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분명하여 배우지 않아도 도덕과 학술을 깨우쳤다고 한다. 우리 언어[方言]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학을 양성하여 한국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 신문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올렸고, 신라의 국학(國學) 설립에 깊이 관여하였다고 추정된다. 신라의 10현(十賢)으로 손꼽히며,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더불어 신라의 3대 문장가로 추앙받고 있다.

[가계]

설총의 자는 총지(聰智)이며, 후손들이 경주 설씨(慶州薛氏) 일문을 형성하고 있다. 설총의 가계는 고대 인물로는 드물게 5대가 복원된다. 증조할아버지는 잉피공(仍皮公)[적대공(赤大公)]으로 고려 시대까지 적대연(赤大淵) 옆의 사당에 모셔질 만큼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마(奈麻) 관등의 담내(談㮈)[담날(談捺)]이다. 아버지 원효(元曉)압량군(押梁郡) 남쪽에 있는 불지촌(佛地村) 북쪽의 율곡(栗谷) 사라수(裟羅樹) 아래에서 태어났다.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가던 길에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요석궁(瑤石宮) 공주와 혼인하였으며, 설총을 낳았다. 요석궁 공주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의 딸이다. 아들 설중업(薛仲業)은 혜공왕[재위 765~780] 때 일본을 왕래하는 등 외교가로 활동하였다.

한편, 조선 후기 이후 경상도 자인현 지역의 유림들은 설총을 경산 출신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엮어 편찬한 『홍유후실기(弘儒侯實紀)』에 따르면, 설총은 유곡(油谷)[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동]에서 태어났고, 유천(柳川)[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여천동]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활동 사항]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는 태어날 때부터 똑똑하고 분명하여 배우지 않아도 도덕과 학술을 깨우쳐 알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총명함을 바탕으로 설총은 학업에 매진하였고, 구경(九經)을 읽고 풀이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신문왕[재위 681~691]을 가까이 모시며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올린 후 높은 지위에 올랐고, 신문왕 대에 설립된 국학(國學)의 제도 정비와 운영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설총은 한국 유학의 종주로 받들어졌다.

아버지인 원효가 입적하자 유해(遺骸)로 소상(塑像)을 만들어 분황사(芬皇寺)에 봉안하고 예배드렸던 사실이 전한다. 원효가 혈사에 거주할 때 가까이에 살았던 집터가 고려 시대까지 전하였다. 『삼국사기』에 어떤 사람들은 설총이 당에 유학하였다고 하지만 확실치 않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학문과 저술]

설총은 신라의 3대 문장가로 손꼽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없다. 719년(성덕왕 18)에 축조한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甘山寺石造阿彌陀如來立像)의 조상기(造像記)에 보이는 찬술자 ‘나마(奈麻) 총(聰)’을 설총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묘소]

설총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위치한 전홍유후설총묘(傳弘儒侯薛聰墓)[경상북도 기념물 제130호]로 알려져 있으나,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한편, 1926년에 경산에서 옛 자인 지역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설총의 가묘(假墓)를 조성하였다.

[상훈과 추모]

설총은 1022년(현종 13)에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어 문묘(文廟)에 종사되었다. 1623년(광해군 1)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 1864년(고종 1) 경산 도동단(道東壇)에 제향되었다. 1923년에는 도동재(道東齋)[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3길 13-6[하대리 175-1]]가 건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홍유후설선생신도비(弘儒侯薛先生神道碑)’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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