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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00
한자 金是鳴
영어공식명칭 Kim Simyeong
이칭/별칭 문숙(聞淑),삼괴정(三槐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4년연표보기 - 김시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김시명 별조청 낭청 감독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55년 - 김시명 당상관으로 승차
활동 시기/일시 1656년 - 김시명 전위사로 외국 사신 접대
활동 시기/일시 1659년 - 김시명 혜산 첨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59년 - 김시명 북도로 유배
몰년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 김시명 사망
거주|이주지 김시명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지도보기
묘소|단소 김시명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청도
대표 관직 개천 군수|혜산 첨사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개설]

김시명(金是鳴)[1604~1660]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문인으로 낭청 감독(郎廳監督)·개천 군수(价川郡守)·혜산 첨사(惠山僉使) 등의 관직을 지냈다.

[가계]

김시명의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문숙(聞淑), 호는 삼괴정(三槐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응수(金應洙), 할아버지는 김영(金瑩), 아버지는 김사행(金四行),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현감을 지낸 신해(申海)[1549~?]의 딸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숙부 김사유(金四維)에게 출계(出系)하였으며, 부인은 사맹(司猛)을 지낸 조종악(趙宗岳)의 딸 한양 조씨(漢陽趙氏)이다. 친형은 통제사(統制使)를 지낸 김시성(金是聲)[1602~1676]이다.

[활동 사항]

김시명은 어릴 시절 아버지 김사행에게 학문을 배웠다. 14세 때 김사행의 학문 공간이었던 식송정(植松亭)을 찾아 온 정구에게 수학하였다. 20세 때에는 장현광(張顯光)에게 『대학(大學)』을 배웠다. 1647년(인조 25) 삼괴(三槐) 아래에 정자를 짓고 ‘삼괴정’이라 편액한 후 자호로 삼았다. 1648년(인조 26) 조정에서 기진흥(奇震興)[1606~1651] 등을 별조청 도청(別造廳都廳)으로 삼고 지포(紙砲)를 제작하게 했는데, 김시명도 종이 제작기술에 밝다하여 특별히 낭청 감독(郎廳監督)에 임명되었다. 1651년(효종 2) 4월 첨지(僉知)가 되었고, 1655년(효종 6) 7월에는 지포를 제작한 공으로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차하였다. 1656년(효종 7) 전위사(餞慰使)가 되어 평양에서 사신을 접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 공로로 개천 군수에 임명되었다. 1659년(효종 10) 혜산 첨사로 재직 중 주위의 모함으로 북도(北道)에 유배되었다가, 1660년(현종 1) 1월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김시명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생전에 김시명이 지었던 삼괴정[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길 83]은 현재 재사(齋舍)로 활용되고 있다. 김시명 사후 퇴락한 것을 1956년에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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