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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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夕茅 |
영어공식명칭 | Jeong Seokmo |
이칭/별칭 | 승모(承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권동 |
출생 시기/일시 | 1922년 11월 - 정석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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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64년 - 정석모 경북문화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87년 1월 10일 - 정석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5월 15일 - 시비 「능금 두벌꽃」 건립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 |
묘소 | 청구공원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백송로 197[백운리 산14-15] |
성격 | 시인 |
성별 | 남 |
본관 | 동래 |
대표 경력 | 월간 『문화춘추』 주간 |
[정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시인.
[개설]
경산 출신의 시인 정석모(鄭夕茅)[1922~1988]의 본명은 승모(承謨)이다. 평소 선량하고 결벽증 같은 것이 있었지만 술에 취하면 독설 기행(奇行)을 일삼는 실수가 잦았다고 한다. 때로는 위험한 시국 관련 발언을 하여 고초를 겪기도 했고, 주의할 인물로 지목되어 사찰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정석모는 일본어를 잘했고, 일본 노래와 기타 솜씨도 뛰어났으며, 생활고에 시달려 주위 사람들에게 애를 많이 먹였지만 참으로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활동 사항]
정석모는 유년기에 경산을 떠났다가, 1950년대 6·25전쟁 이후 경산 고산으로 돌아왔다. 친척이나 성장기의 벗이 없어, 정석모의 성장 과정과 그 뒤 30대에 이르는 행적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마산(馬山)에서 성장했고 일본의 주오[中央]대학 전문부에서 수학했으며, 20대에는 중국 만주 일대를 방랑했다가 해방 후 귀국하였다.
1950년대 『문예(文藝)』지에 「목화(木花)」를 발표했고, 1958년 『현대문학』지에 실린 「능금 두벌꽃」 등이 유치환 시인의 추천을 받았다. 정석모는 일반회사 사무원, 신문기자, 월간 『문화춘추(文化春秋)』의 주간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다. 1964년에는 경북문화상[문학]을 수상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석모의 시집으로는 1970년에 발표한 『목화(木花)』가 있으며, 1984년에는 시선집 『정석모시선 고엽(枯葉)』을 발표하였다.
[묘소]
정석모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청구공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8년 5월 15일 청구공원의 묘지에 문우(文友)들이 시비 「능금 두벌꽃」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