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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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南玉 |
영어공식명칭 | Park Namok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상권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2월 24일 - 박남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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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0년 - 박남옥 대구남욱정보통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36년 - 박남옥 경북여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43년 - 박남옥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44년 - 박남옥 이화여자전문학교 휴학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박남옥 조선영화건설본부 광희동 촬영소 입사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박남옥 대구매일신문사 입사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박남옥 조선영화사 촬영소 입사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박남옥 「자유만세」 스탭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박남옥 「새로운 맹서」 스크립터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박남옥 국방부 촬영대 입대 |
활동 시기/일시 | 1954년 - 박남옥 프로덕션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12월 10일 - 박남옥 「미망인」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박남옥 동아출판사 입사 |
활동 시기/일시 | 1959년 - 박남옥 『시네마팬』 창간 |
활동 시기/일시 | 1978년 - 박남옥 동아출판사 퇴사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박남옥 미국 이주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박남옥영화상 제정 |
몰년 시기/일시 | 2017년 4월 8일 - 박남옥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20년 - 박남옥 문화거리 조성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거주|이주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학교|수학지 | 대구남욱정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
학교|수학지 | 경북여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학교|수학지 | 이화여자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활동지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서울특별시 |
성격 | 영화감독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영화 「미망인」 제작 |
[정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
[개설]
박남옥(朴南玉)[1923~2017]은 1923년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면[현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서 태어났으며, 대구 지역과 서울에서 활동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다. 1955년 여성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작 영화를 상영하였으며, 작품명은 「미망인」[The Widow]이다. 1959년에 『시네마팬』이라는 영화 잡지를 발행하였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착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활동 사항]
박남옥은 1923년 아버지 박태섭과 어머니 이두리 사이에서 십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대구 지역에 소재한 경북여학교 재학 시절 체육, 특히 육상과 투포환에 소질을 보였으며, 미술과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38년과 1939년에 전조선육상선수권대회 등 전국체전에 투포환 선수로 출전하여 3회 연속 신기록을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부모의 만류로 운동을 그만두었고,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 유학을 시도하였다.
일본 유학이 좌절된 후 194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에 진학하였으나, 미술과 영화에 지속적인 관심과 열망을 보였다. 이 시기 영화배우 김신재(金信哉)[1919~1998]를 동경하였는데, 팬으로서 맺어진 인연은 만년까지 지속된다. 1944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1년여 만에 휴학하고 조선영화건설본부에서 처음으로 영화 관련 일을 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강권으로 대구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고, 대구매일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틈틈이 영화평을 썼다.
1945년 해방 직후 서울로 간 박남옥은 영화 「자유만세」[1946] 스탭으로 일하였고, 「똘똘이의 모험」[1946], 「민족의 새벽」[1947]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1947년에는 신경균(申敬均)[1912~1982] 감독의 「새로운 맹서」[1947] 제작에 스크립터로 참여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에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하여 전쟁 관련 뉴스 제작에 참여하였고, 1953년 부산 피난지에서 시나리오 작가 이보라와 결혼하였다.
1954년 다시 서울로 간 박남옥은 딸을 출산한 직후 가졌던 한 모임에서 전쟁 미망인 관련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고, 남편 이보라가 쓴 「미망인」 시나리오로 영화 제작을 시작하였다. 박남옥은 갓 태어난 딸을 업고 제작진과 영화 완성을 위해 분투하였다. 「미망인」은 1954년 7월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그해 말 16㎜ 흑백 장편 영화로 완성되었다. 「미망인」은 1955년 12월 10일에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하였으나 3일 뒤 상영이 중단되었다.
박남옥은 「미망인」의 흥행 실패로 실의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957년 언니가 관리 과장으로 있는 동아출판사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영화에 관심을 가지다가 1959년 영화 전문 잡지인 『시네마팬』을 창간하였다. 하지만 초반 몇 호를 발행한 뒤 판권을 강인순에게 넘기게 되었고, 이후 1978년까지 동아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퇴직 후 1992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2017년 4월 8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남옥은 영화 「미망인」을 감독 및 제작하였으며, 「미망인」은 1955년 12월 10일에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이후 1959년에 월간 영화 잡지 『시네마팬』을 창간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던 영화 「미망인」의 필름이 복원되어, 1997년 개최된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7년에 개최된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박남옥의 「미망인」이 재조명을 받았다. 이후 2008년 박남옥영화상이 제정되었고, 2020년 7월 1일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 소재한 꿈바우전통시장에 박남옥 문화거리가 조성되었으며, 박남옥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한편, 2001년에 임순례 감독이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를 연출하여 박남옥의 영화 관련 여정을 조명하였다. 같은 해 김재의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꿈」으로 박남옥의 영화와 삶을 기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