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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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Moonhouse Burning |
이칭/별칭 | 달불놓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유신 |
중단 시기/일시 | 1980년대 - 달집 태우기 풍습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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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 시기/일시 | 2000년대 - 경산시 중방동 당산제 복원시 달집 태우기 재개 |
성격 | 민속풍습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정월대보름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달집에 불을 지르는 풍속.
[개설]
달집태우기는 정월 대보름 무렵 나무더미를 쌓아 달집을 짓고 불을 놓아 재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달집을 태운 불더미 속에 밤, 고구마, 감자 등을 구워먹으면 부스럼을 예방한다고 믿었다.
[연원 및 변천]
달집태우기의 유래와 역사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오랜 농경문화의 터전에서 생성되고 전승되어 온 풍속의 하나로 보여진다. 새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보름은 달이 가지는 생산력과 주술력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정월 대보름에 달과 관련된 여러 세시풍속이 집중되어있는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절차]
흔히 달집태우기는 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행한다. 달집의 재료는 솔가지 등을 비롯한 나뭇가지가 보편적이다. 생죽을 넣어 터지는 소리에 악귀가 도망간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달집의 형태는 대개 움집과 비슷한 원추형으로 쌓는다. 점화자는 동네 대표, 부정이 없는 노인, 후사를 두지 못한 사람이나 노총각 등이 선정된다. 달집의 연기나 쓰러지는 방향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달집태우기의 점세적 요소]
달집태우기에서 농경을 위한 점세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1970년에 조사된 기록에 따르면, 경상북도 경산시와 청도군에서는 달집을 짓고 그 것을 사를 때 달을 보고 풍년을 기원하며, 달의 크기와 색에 의하여 풍흉을 점친다고 한다. 이때 아들이 없는 여자는 속옷을 달집과 같이 태우거나 달집이 타고 난 뒤에 남은 재로써 잿물을 받아 속옷을 세탁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달집을 태우며 달집 주위를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며 풍요를 기원하기도 하고, 달집 속에 대나무를 넣어서 폭죽과 같은 소리를 내어 이 음향으로 점을 치기도 했다. 달집이 타는 모양 또한 풍흉을 점치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달집이 타서 기울어지는 모양을 통해서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이처럼 달집태우기는 불의 형세의 크고 작음이 농산물의 성장이나 재화의 증식과 관련이 있다는 모방주술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남천면 협석리에서는 마을 앞의 누룩들 빈 공터에 달집을 세워두고 달이 뜰 무렵 달집태우기를 하며 소망의 성취를 기원하였다. 달집을 태운 뒤에는 밤, 고구마, 감자 등을 넣고 구워먹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면 그 해에 부스럼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자인면 원당리에서는 마을 동산에 달집을 태우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연기를 많이 피워 연기에 가려진 달을 보는데, 이렇게 하면 달의 색이 불그스레하고 모양이 선명해진다고 믿었다. 주로 남자가 동산에 올라가 달집을 태우며 가족의 건강과 기자 등을 기원하였다.
용성면 곡란리에서는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용산과 뒷산에 각각 달집을 쌓아 올렸다. 달집에 불을 내놓을 때는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고 빌었으며, 이에 따라 불을 붙이는 이는 술 한말을 내놓는 것이 관례였다. 한편 그 해 운세가 좋지 않다는 점괘가 나온 남자는 집에서 짚으로 인형을 만들고, 혼자서 달을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가 절을 하고 인형을 태웠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불행한 액운이 인형과 함께 사라진다고 믿었다.
경산시 점촌동에서는 마을 앞의 산에 달집을 쌓아 올렸다. 사람들은 서로 연기가 많이 올라가도록 애쓴다. 연기가 많이 올라가는 마을이 풍년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달이 동쪽으로 두꺼우면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 두꺼우면 흉년이 든다 믿었다.
경산시 중방동에서는 과거 마을 청년들이 동산에 올라 달집을 태웠으며, 이 행위를 ‘달불놓기’라고 불렀다. 마을 주민들의 생업 변화와 화재의 위험으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현황]
경산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던 달집태우기 풍습은 1970년대 중반부터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잦은 산불로 인한 당국의 단속도 있었지만 주민들 스스로의 의식에서 민속이 사라졌던 것이다. 달집에 불을 붙여 달을 맞이하는 풍습은 없어졌으나 대보름을 맞이하여 복을 빌고 풍년을 비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경산시 중방동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동제를 복원하여 당산제라는 명칭으로 중방동 및 남천 둔치 일원에서 마을굿과 당산제, 지신밟기, 풍물놀이, 당산제 등을 지낸다. 이때 마지막 순서로 남천 둔치에서 ‘애기달집[작은 달집]태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