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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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Weaver's Song |
이칭/별칭 | 베틀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채록 시기/일시 | 1993년 1월 5일 - 「베틀 노래」 김순계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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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베틀 노래」 『한국민요대전 : 경상북도 민요 해설집』에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베틀 노래」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
채록지 | 「베틀 노래」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리 |
가창권역 | 「베틀 노래」 - 경상북도 경산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 |
가창자/시연자 | 김순계|박태수|박복수|채동수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천리에서 전해지는 베를 짜면서 부르던 노래.
[개설]
「베틀노래」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성 노동요로서, 사설이 거의 일정하게 짜여 있지만 내용이 풍부하고 비유가 뛰어나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길쌈 도구와 길쌈 노동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하는데, 베틀의 각 부분의 이름을 들어가면서 옛날 역사나 자연의 경치에 비유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1993년 1월 5일 경산시 용성면 용천리 용천경로당에서 채록되었으며, 가창자는 김순계[여, 1927년생]이다. 「베틀 노래」는 1995년 문화방송이 간행한 『한국민요대전: 경상북도 민요 해설집』 128~129쪽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2005년 이동근과 김종국이 엮은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 275~277쪽에도 여러 편의 「베틀 노래」를 채록해 놓았다
[구성 및 형식]
「베틀 노래」는 베틀을 차리는 형세와 베짜는 아낙네가 신랑을 과거 보내 놓고 그리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내용이 소박하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정감 있는 어휘를 구사하고 있다.
[내용]
하늘에 옥황선녀 지하로 나려와서/ 그저 놀기 심심하야 물레구경 잘했구나/ 굵으나 굵은 꼰치 실이동실 자사 내어/ 서월이라 올라가서 대궐 지은 도대목을 잠깐 잠시 빌려다가/ 굽은 나무 굽다듬고 곧은 나무 곧다듬어 삼 칸 팔 척 집을 저여/ 아랫방은 옥녀 주고 웃방으는 선녀 주고 비틀 놀 때 전혀 없어/ 사면으로 살피보니 옥난간이 비었구나/ 평양강에 채리 볼 쌔/ 앞뚝다리 높게 놓고 뒷뚝다리 낮게 나야/ 비틀다리 니 다린데 요내 다리 두 다리요/ 비틀몸은 두 몸인데 요내 몸은 홑몸이라/ 가리새라 질런 모냥 청룡황룡 걸린 듯고/ 안치널에 앉인 모색 우리 나라 임금님이 용산좌왕 앉은 듯네/ 부태라 둘런 모냥 용모산 전일봉에 허리안개 둘런 듯고/ 말귀동동 감은 양은 삼대독자 외동아들 밍캉보캉 감은 듯네/ 말귀라 걸린 모양 일구아가 집을 져서 마구못을 쳐연 듯고/ 물이 칠굼 저질개는 강태공의 곧은 낙수 우수강에 띄웠더니/ 꼬리 너븐 금붕어가 물을 묵고 꼬리 치고 가는 지상/ 북나더는 저 형상은 홍에학이 알을 품고/ 대동강에 넘노는 듯 베옹강에 넘노는 듯/ 쾅쾅치는 바다집은 우리 나라 선본님이/ 밀창 도창 반만 열고 장기바닥 떠는 소래/ 한치 두치 처치발은 남해서산 무지갠가 북해서산 걸렸도다/ 잉애때는 삼형제요 눌구때는 호부래비/ 새모맞은 저 비개미 억만군사 거느리고 십만 진중 흩어지네/ 나푼나푼 나부손은 날 오라고 손치는강 님 오라고 손친 듯다/ 용두마리 우는 소리 민경세제 금비들캐 알을 잃고 우는 소래/ 꾸벙 꾸벙 꾸벙 대는 헌 신짝에 목을 매고 양두방울 넘노면서/ 올라가미 나 죽는다 니러가미 나 신세야/ 베때라 허린 모냥 구시월 시단풍에 가랑잎이 흐린 듯고/ 도틈 도틈 도터마리 입은 옷도 벗기 하고 벗은 옷도 입기 하네/ 금사 한 필 다 짰구나 일만 이천 일흔두 자/ 앞거랑에 씻거내어 뒷거랑에 헹가가주/ 푸다듬이 곱기하야 금오주석 가는 실에/ 준주단색 가는 바늘 전반절로 뉘비내어/ 핫옷쩌서 농에 여코 서월가신 선본님이/ 오늘이나 오실랑강 니을이나 오실랑강 손을 꼽아 기다리니/ 일산때를 바랬더니 만사때가 이 왠 일고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전 경산 지역에서는 필요한 옷을 만들기 위해 베를 짜야 했다. 무명옷이나 삼베옷, 혹은 견직물로 된 옷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모든 일들이 여인들이 베를 짜는 수고로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현황]
「베틀 노래」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성 노동요지만, 경산 지역에서는 예전처럼 베를 짜는 장면이나 소리를 쉽게 들을 수는 없다. 베틀을 걸어놓고 베를 짤 수 있는 사람들도 이제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베틀 노래」 같은 유형의 사설이 기록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어, 베를 짜는 노동의 고됨을 살펴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 지역의 「베틀 노래」는 내용이 다채롭거나 기발하지는 않다. 베틀이 너무 커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지 못하고 각자의 집에서 혼자 베를 짜야만 했기 때문에 노래 역시 혼자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 부르던 「베틀 노래」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노동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