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018
한자 慶山-慶山-貯水池-
영어공식명칭 The story of Gyeongsan's reservoir that has moistened the fields of Gyeongsa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정의]

경산 지역 저수지의 축조 역사와 저수지에 얽힌 이야기.

[개설]

저수지는 농경 사회, 특히 수도작이 보편화된 농경 지대에서 보(洑)와 더불어 중요한 수리 시설 중 하나였다. 조선 후기 이앙에 의한 수도 재배가 삼남 지역에서 보편화되면서 영조·정조 대에는 국가적인 수리 사업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수리 사업은 이후 잦은 폐해로 민란의 원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국가적인 수리 사업이 퇴조함에 따라 농촌에서는 마을 단위의 제언계(堤堰契)와 같은 수리 조직을 통해 수리 시설을 축조하여 왔다. 이에 따라 마을 단위 수리 시설의 축조와 관리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협동 관행이 되었고, 공동체적 삶의 공고화에 크게 작용하였다.

강수량이 적고 구릉성 침식 저지를 이루고 있는 경산 지역에서도 오래전부터 농업용수와 생활용수의 확보를 위해 수많은 저수지를 축조하고 관리하여 왔다. 근대식 수리 관리는 일제 강점기에 결성된 경산수리조합에서 비롯되었는데, 해방 이후 여러 조합과 농조의 합병 과정이 있었다. 현재는 경산시와 한국농어촌공사 경산청도지사가 지역의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다. 경산 지역에 소재한 각각의 저수지는 지역민의 삶의 궤적을 반영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경산 지역 저수지 현황]

저수지 관련 한 통계에 의하면, 2014년 현재 전국에 17,000여 곳의 저수지가 있는데, 경상북도[5,529곳], 전라남도[3,216곳], 경상남도[3,188곳] 지역에 11,933곳의 저수지가 밀집하여 있다. 이러한 분포 현황은 조선 후기 이앙에 의한 수도 재배가 삼남 지역에서 보편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삼남 지역 중에서도 경상북도에 특히 많은 수의 저수지가 분포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넓은 면적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수지 관련 통계를 시군별로 살펴보면, 경산시에는 전국에서 여덟 번째로 많은 수의 저수지가 분포하고 있다. 저수지의 면적으로는 인접한 영천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에 해당한다. 농업에의 의존도가 높았던 전통 사회에서 저수지를 비롯한 수리 시설이 경산 지역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영농 기법과 재배 작물의 변화가 큰 현대 사회에서는 저수지가 예전처럼 농업용수나 생활용수의 공급처로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화된 생활 양식이 보편화함에 따라 지역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서도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과 의미를 지니는 저수지는 경산시에 300여 곳이 있는데, 그중 90% 이상을 경산시가 관리하고 있고, 나머지는 한국농어촌공사 경산청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전체 300여 곳의 저수지 중 96%인 299곳이 10㏊ 미만의 소규모 저수지이다.

경산시의 저수지 분포 현황을 읍면동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용성면에 가장 많은 수의 저수지가 분포하고 있고, 진량읍, 남산면, 와촌면, 동 지역, 남천면, 자인면, 하양읍, 압량읍 순으로 뒤를 잇고 있다. 몽리 면적은 진량읍이 1,740㏊로 압도적으로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용성면이 780㏊, 동 지역이 732㏊, 와촌면이 729㏊를 차지하고 있다. 축조 시기별로는 19세기 이전에 축조한 저수지가 19곳, 19세기부터 1950년까지 축조한 저수지가 229곳, 그리고 1950년 이후에 축조한 저수지가 63곳이다.

이상의 현황을 종합하여 보면, 경산 지역에 소재한 절대 다수의 저수지가 19세기 이후에 축조한 10㏊ 미만의 소규모 저수지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부터 국가적 규모의 수리 사업이 쇠퇴하면서 마을 단위의 소규모 조직으로 저수지를 축조하여 온 그간의 과정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평들의 농업용수 공급지에서 시민의 휴식터가 된 남매지]

경산시 계양동에 소재한 남매지는 수혜 면적 158.6㏊, 제방 길이 520m에 이르는 큰 규모의 저수지이다. 남매지에는 현재 다음과 같은 애틋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어느 마을에 오누이와 눈먼 홀어머니가 살았는데, 오빠는 머슴살이 중에도 틈틈이 공부를 하였다. 마침내 과거 날이 다가왔으나 노잣돈이 없던 오빠는 여동생이 마을 제일의 부자인 황 부자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조건으로 노잣돈을 빌려 과거 길에 올랐다. 마침내 오빠가 장원 급제하고 금의환향하였으나, 여동생은 황 부자의 아들에게 겁탈당한 후 마을 앞 못에 빠져 죽었고, 어머니도 딸을 말리다 함께 죽은 뒤였다. 장원 급제하여 호강시키려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모두 잃은 오빠는 황 부자 아들의 소행을 알리는 상소문을 조정에 올린 뒤, 보름달이 밝은 어느 날 못으로 걸어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못을 ‘남매지’라고 불렀다.

이처럼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남매지는 넓은 대평들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을 위한 농업용수 공급에 큰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된 이후에는 농업용수 공급지로서의 역할에 더하여 지역민의 휴식처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경산시에서는 2009년부터 5년 동안 남매지 일원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진행하여 2013년에 산책로, 수상 관찰 데크, 연꽃식물원, 음악 분수, 바닥 분수를 설치하였다. 야간에는 레이저 조명 시설을 이용한 화려한 음악 분수 쇼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경산 지역 최대 규모 저수지가 된 문천지]

경산시 진량읍 문천리 일대에 소재한 문천지는 한때 경상북도에서 저수량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였을 정도로 규모가 큰 저수지이다. 문천지는 1960년대 이후 진량읍압량읍 일대의 광활한 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왔다. 예로부터 문천지의 하류 지역은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리 시설이 부족하여 가뭄이 들면 새조차도 굶는다고 할 정도로 한발의 피해가 컸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일제 강점기 말엽인 1940년대 초반에 저수지 축조를 위한 설계를 실시하였으나, 해방 이후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는 혼란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도 경산수리조합을 중심으로 저수지 축조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1959년 11월에 축조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문천지 준공에 큰 노력을 기울인 경산수리조합장 박문기의 공을 기리는 유공비에는 아래와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저수지 축조 이전의 황량하였던 지역 사정을 잘 보여준다.

“메추리 두 마리가 먹을 것을 찾아 날아 왔다가 이 중 한 마리가 굶고 갔다는 이곳 황무지에 문천지가 축조돼 쌀의 보고가 되었다.”

문천지의 준공으로 인해 진량읍 일대뿐만 아니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압량읍 일대까지 부촌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문천지는 규모가 큰 저수지이다. 그러나 못의 규모가 큰 만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특히 우기에 홍수 조절을 제대로 못 할 경우에는 인근 농가에 큰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한편, 문천지는 한때 일반인 대상의 수상 레포츠 공간으로도 이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인접한 대학의 수상 스포츠 실습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 착안하여 경산시에서는 문천지에 수상관광레포츠공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된 반곡지]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에 소재한 반곡지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1903년에 축조한 중간 정도 규모의 저수지이다. 반곡지의 제방 높이와 길이는 각각 6m, 139m이고, 유역 면적은 79㏊, 저수량은 39,300톤이다. 반곡지는 경산시의 주요 도로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있지만, 근래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제방을 따라 늘어선 수십 그루의 왕버드나무가 저수지와 어우러져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이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물 위로 뻗어 내린 수령을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람한 왕버드나무의 가지가 저수지의 물빛을 한층 푸르게 하여 빚어낸 멋진 풍경은 반곡지를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소로 만들었다. 또한, 주변에 복숭아 과수원이 많이 분포하여 복사꽃이 필 무렵에도 훌륭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진 촬영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반곡지가 ‘경산의 주산지’ 혹은 ‘경산의 무릉도원’으로 불려 왔다.

반곡지는 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에 선정되었으며, 2013년 10월에는 안전행정부의 ‘우리마을 향토자원 Best 3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반곡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경산시에서도 반곡지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조성하고 제방 산책길을 정비하였다.

[농사의 생명줄에서 시민의 휴식처로]

경산 지역에는 수많은 저수지가 있지만, 대부분은 19세기 이후 마을 단위 사업으로 조성되었다. 전통 사회에서 마을 사람들의 협력으로 일구어낸 저수지는 모두가 지역민의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였다. 특히 경산 지역은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가뭄에 대비하여 많은 저수지를 축조할 필요가 있었다.

와촌면 소월리소월지하양읍과 영천시 금호읍을 가로지르는 금호강 북쪽에 넓게 형성된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경산 지역 두 번째 규모의 저수지이다. 또한 용성면 송림리송림지매남리용성지도 좁은 농토에 농업용수마저 부족했던 지역 농민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두 저수지의 물은 멀리 자인면 일대까지 적셔주고 있다. 남산면 조곡리송내지남산면 일대를 풍요롭게 만드는 주요 수원지이다.

다음으로 진량읍 선화리의 연지와 압량읍 의송리의 침법지는 진량읍압량읍 일대 농지의 주요 수원지이다. 연지와 침법지는 1920년대에 축조된 것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연지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축조된 것을 암시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곳에 거주한 정응지라는 인물에게 도인이 꿈에 나타나 서리가 내린 곳에 저수지를 축조하라고 알려주었고, 정응지가 도인이 가르쳐 준 곳에 저수지를 축조하였다고 한다. 정응지는 저수지를 축조한 이후 저수지 곁에 애련재라는 재실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침법지는 연지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연지와 침법지가 축조되면서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던 근처의 들이 곡창지로 바뀌었다.

경산 지역에는 이처럼 많은 저수지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축조되었지만, 이제는 도시화의 진행으로 인해 다수의 저수지가 다양한 행사와 활동이 이루어지는 문화 레저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남매지문천지, 반곡지 외에도 여러 저수지에 레저와 휴식을 위해 사람들이 찾고 있다. 연꽃으로 유명한 영남대학교 근처의 삼천지와 감못, 신천동진못, 진량읍 선화리의 연지, 가시연으로 유명한 압량읍 당음리의 당음지 등은 농업용수 공급이라는 전통적 기능으로 농민에게 기쁨을 주는 동시에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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