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50
한자 慶山郡
영어공식명칭 Gyeongsan-g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895년 6월 23일 - 경산현을 경산군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896년 - 대구부 경산군에서 경상북도 경산군으로 행정소속 변경
개정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자인군, 하양군, 신녕군 남면, 영천군 창수면, 청도군 일위면 등을 경산군에 통합
개정 시기/일시 1956년 - 경산면을 경산읍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973년 - 안심면을 안심읍으로, 하양면을 하양읍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981년 - 안심읍·고산면을 대구직할시로 편입
개정 시기/일시 1989년 - 경산읍 일원을 경산시로 승격
폐지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경산군과 경산시가 경산시로 통합

[정의]

1895년부터 1994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경산군(慶山郡)은 1895년(고종 32) 경산현(慶山縣)을 개칭한 것으로 1994년 경산시(慶山市)로 개편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를 포함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및 동구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895년(고종 32)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二十三府制)를 실시함으로써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도모하였다. 아울러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으로 구분되어 있던 기존 지방 행정 구역을 부와 군으로 이원화했는데, 이때 기존의 경상도 경산현은 대구부(大邱府) 경산군으로 개편되었다.

[관련 기록]

23부제는 1895년 5월 26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관한건」, 각 군에 대한 등급은 1895년 9월 5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164호 「군수의 관등 봉급 건과 각 군의 분등표」에 의거해 정해졌다. 13도제는 1896년(건양 1) 8월 4일[양력] 반포된 칙령 제36호 「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에 의거해 실시되었다. 1914년 4월 1일부로 실시된 부·군·면 통폐합은 1913년 12월 29일 공포된 「도의 위치·관할구역 변경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의거한 것이다.

[내용]

1895년 윤5월 1일[음력, 양력 6월 23일]부로 조선 초기 때 제정된 8도(八道) 체제가 23부 337군 체제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경상도 경산현은 대구부 경산군으로 개편되었으며, 4등급 군으로 매겨졌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23부제 실시로 지방행정에 혼란이 생겼고, 결국 1년 만인 1896년(건양 1) 8월 4일[양력]에 23부가 13도로 이루어진 도제(道制)로 환원되었다. 이때 경산군은 경상북도에 편제되었다.

1933년 간행된 『경산군지』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 경산군에는 읍면(邑面) 21동, 동면(東面) 16동, 남면(南面) 17동, 서면(西面) 17동, 북면(北面) 13동 등 4면 84동의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어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은 안심면 12동, 읍면은 경산면 17동, 서면은 고산면 13동, 남면은 남천면 12동, 북면은 압량면 15동 등 5면 69개동으로 변경되었다. 1900년대 초반 경산군 호구(戶口)수는 원호(元戶) 3,256호, 인구는 15,542명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반의 호구수는 경산면 1,586호, 7,862명, 고산면 1,017호 6,260명, 안심면 1,425호 8,256명, 압량면 1,584호 8,427명, 남천면 882호 4,765명으로 5개 면을 합하면 모두 6,494호, 35,570명이 된다. 여기에다 하양면·와촌면의 구 하양군 호구 3,041호, 15,770명과 자인면·용성면·진량면·남산면 등 구 자인군 호구 6,045호, 32,169명을 합하면 경산군의 총 호구수는 15,580호, 83,509명이 된다. 이 호구수는 1930년대 당시 자인군 일대에 거주하였던 일본인과 지나인(支那人)을 제외하고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경산군은 기존의 행정 구획을 기준으로 보면 30년 동안 2배가량 호구수가 증가했지만, 통합된 규모 전체로 보면 5개 가량 증가한 것이다.

호구 증가는 기본적으로 자연 출생이 있지만 이외에도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인구 이동이 원인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1905년 1월 1일의 개통된 경부선 철도와 1917년 개통된 대구선 철도가 나란히 경산 지역을 통과하면서, 외부 인구 유입은 더욱 촉진되었다.

[변천]

일제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는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하여, 토지 조사 사업 등을 통해 집적된 국토 자료를 바탕으로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다. 이에 따라 전국은 13도 12부 220군 체제로 개편되었다. 이때 경산군자인군하양군 전 지역, 영천군의 남성동, 신녕군의 박사동, 청도군의 석현동을 통합하였다. 당시 경산군의 하부 행정 구역은 와촌면·하양면·진량면·자인면·용성면·남산면·압량면·경산면·남천면·고산면·안심면 등 11개면이었다. 이 가운데 기존의 경산군은 금강동·내곡동·대림동·동호동·사복동·상매동·서호동·숙천동·신기동·용계동·율암동·율하동 등의 안심면, 삼남동·삼북동·임당동·서상동·백천동·옥곡동·사정동·중방동·계양동·대정동·대평동·신교동·상방동·옥산동·정평동·대동·중산동의 경산면, 욱수동·신매동·삼덕동·성동·연호동·고모동·시지동·매호동·사월동·가천동·노변동·이천동·내환동의 고산면, 대명동·삼성동·흥산동·금곡동·협석동·송백동·산전동·신방동·신석동·구일동·원동·하도동 등의 남천면, 갑제동·금구동·내동(乃洞)·부적동·사동·삼풍동·신대동·신촌동·압량동·용암동·의송동·인안동·조영동·평산동·현흥동 등의 압량면으로 모두 5개면 69개 동이다.

이후 1956년 7월 8일 경산면이 경산읍으로 승격하면서 1읍 10면이 되었고, 1973년 7월 1일 안심면이 안심읍으로, 하양면이 하양읍으로 승격하여 3읍 8면 체제가 되었다. 1981년에는 안심읍과 고산면이 대구직할시에 편입되면서 2읍 7면으로 축수되었다. 1989년에는 대통령령 제12007호로 경산읍과 압량면의 일부[삼풍동·평산동·사동·갑제동·조영동·점촌동·여천동·유곡동·신천동·내동(內洞)·남방동]를 관할로 하는 경산시가 설치되면서, 경산군은 1읍 7면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94년 8월 3일 법률 제4774호로 전국 33개 도농복합시가 설치되면서 경산군과 경산시는 1995년 1월 1일자로 경산시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군은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등장했던 행정구역으로서 국가의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한 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1895년에는 군현간 통폐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914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편의를 위해 전국의 군을 통폐합하고, 부·군·면의 관할 구역에 따라 면적·인구·경제력의 규모를 조정하였다. 경산군은 이때 하양군자인군 및 영천군, 청도군, 신녕군의 일부를 통합함으로써 현재의 관할 구역을 갖추었다. 이러한 경산군의 행정구역 변화 과정은 근현대 경산의 성장 과정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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