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68
한자 裵爾仁
영어공식명칭 Bae Iin
이칭/별칭 배이후(裵爾厚),시효(始孝),묵옹(黙翁)
분야 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32년 - 배이인 조봉대부 동몽교관 증직
추모 시기/일시 1864년 - 배이인 정려
추모 시기/일시 1902년 - 배이인 가선대부 예조참판 증직
추모 시기/일시 1924년 - 배이인 충효각 건립
거주|이주지 경상도 하양현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충효각 -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8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성주(星州)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개설]

배이인(裵爾仁)[?~?]은 하양 출신의 효자이다. 효행이 정부에 알려져 정려(旌閭)를 받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증직되었다.

[가계]

배이인의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이후(爾厚), 자는 시효(始孝), 호는 묵옹(黙翁)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배경대(裵慶大),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배세첨(裵世襜), 증조할아버지는 배상조(裵尙藻)이며, 5대조는 임진왜란 당시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배덕문(裵德文)이다.

[활동 사항]

배이인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아픈 아버지의 대변 맛을 보고 병환을 살폈으며,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제단 아래에서 장수를 빌었다. 그때 까마귀가 나타나 영약(靈藥)이 있는 연못으로 인도해 주었다. 마침 겨울이라 연못이 얼어 있었는데, 두 마리의 잉어가 얼음을 깨고 올라왔다. 배이인은 잉어를 가지고 돌아와 아버지의 병환을 다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삼년상을 마친 후에는 병환으로 누운 어머니를 정성껏 보살폈다.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드렸다. 또한, 매가 잡아다 준 꿩 두 마리로 어머니를 봉양하기도 하였다. 숙종과 경종의 국상(國喪) 때에는 시릉(侍陵)하며 6년간 채식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832년 배이인의 효행이 조정에 보고되어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으며, 1864년(고종 1)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1902년(광무 6)에는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 1924년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의 포장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 배이인의 효행을 기리는 충효각(忠孝閣)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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