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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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전통 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개설]
경산 지역의 교육은 시대별로 고려 시대의 향교, 조선 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현재 경산 지역에 소재한 대학교는 10개에 이르며, 경상북도의 다른 시·군과 달리 인구가 증가해 오면서 학교 역시 지속적으로 설립되어 왔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지방 교육의 중심지는 향교였다. 인종[재위 1122~1146] 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주와 현에 향교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경산 지역에서 관학 교육이 이루어진 곳은 1172년(명종 2) 장산군으로 보인다. 장산군은 경산 지역[장산군, 자인현, 하양현, 구사부곡]에서 가장 먼저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감무가 파견된 이후 향교 건물이 없더라도 문과 출신 수령이 관구학사(菅句學事)를 겸하도록 했기 때문에 장산군에서도 수령에 의해 교육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경산 지역에서의 향교 설립은 고려 후기에 이루어졌다. 경산향교는 1390년(공양왕 2) 당시 구교동(舊校洞)[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옥곡동]에 문묘를 건립하고 명륜당을 세워 강학하였다. 자인향교는 고려 후기인 공민왕 연간에 처음 설립되었다고 전해지나, 연도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1562년(명종 17) 고려 구기(舊基)에 향교를 건축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 역시 유학을 통해 향촌 교화와 지방 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태조 대부터 향교가 설립되었다. 향교는 수령, 교관, 재지사족 등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되었다. 조선 시대 경산 지역에는 경산향교·하양향교·자인향교가 있었다. 경산향교는 고려 후기에 이미 설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1911년에는 경산공립보통학교[현 경산초등학교]가 경산향교에 세워졌다.
하양향교는 1481년(성종 12)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인향교는 고려 공민왕 연간에 처음 설립되었다고 전하나 그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고, 1562년(명종 17) 경주부윤 이정(李楨)에 의해 중건되었다. 당시 자인현은 경주부의 속현(屬縣)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지역민의 열망에 따라 특별히 자인향교가 세워졌던 것이다.
사립 교육 기관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서원은 향교처럼 교육과 제향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향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서원에 제향된 인물은 경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 연고가 있는 유학자라는 것이다. 『교남지(嶠南誌)』에 따르면, 조선 후기 경산현 지역에는 이황(李滉)과 정경세(鄭經世)를 제향한 고산서원(孤山書院), 서사선(徐思選)을 제향한 옥천서원(玉川書院), 여대익(呂大翊)을 제향한 송호서원(松湖書院)이 있었으며, 자인현에는 이언적(李彦迪)을 제향한 관란서원(觀瀾書院), 최문병(崔文炳)을 제향한 용계서원(龍溪書院)이 있었다고 한다. 하양현에는 허조(許稠)를 제향한 금호서원(琴湖書院), 김시성(金是聲)을 제향한 남호서원(南湖書院)이 있었는데, 이 중 금호서원은 경산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이었다.
[개항기]
1905년(광무 9) 을사조약 체결 이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실력과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신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대구광문사·대동광문회·대구광학회·달성친목회·강의단·봉성광학회·영북학회·경주군교육회·영북학회·간친교육회·운산친목회 등과 같은 애국계몽단체가 결성되어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기독교단에서는 교육 선교를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1906년(광무 10) 3월 「흥학조칙(興學詔勅)」이 만들어지자 경상북도 관찰사 신태휴(申泰休)는 「흥학훈령(興學訓令)」을 발표하여 신교육사조를 보급하기 위해 근대 학교를 경상북도 지역에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경산 지역에도 근대 학교가 설립되어 민족 교육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이 시기 세워진 사립 학교는 16개교 이상이다.
경산 지역에서 관민 주도로 세워진 학교는 자인 지역에 설립된 사립배의학교(私立培義學校)이다. 민간 주도로 세워진 사립 학교는 자인 지역에 7개교, 경산군 지역에 4개교, 하양 지역에 4개교가 있었다. 자인 지역에 세워진 학교는 7개교로, 포명학교(布明學校), 양성학교(養成學校), 배양학교(培養學校), 덕숭학교(德崇學校)[숭덕학교], 진명학교, 진신학교(進新學校), 당리학교(堂里學校)이다. 경산군 지역에 세워진 학교는 4개 교로, 삼산학교(三山學校), 명륜학교(明倫學校), 풍진학교(豊進學校), 계동학교(啓東學校)이다. 하양 지역에 세워진 학교는 5개교로, 진덕학교(進德學校), 도명학교(道明學校), 자인향교 부속 사립학교[명칭 불명], 보정학교(普晶學校), 계남학교(啓南學校)이다. 민간이 주도하여 세운 학교 중 다수는 기독교 북장로계가 설립을 주도한 것이다. 계동학교는 신기교회, 보정학교는 송서동교회, 당리학교는 송림교회, 기독도명학교는 봉림동교회, 계남학교는 동호교회, 진신학교는 전지교회, 숭덕학교는 당곡교회가 세웠다.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인을 ‘충량한 제국 신민’으로 만들 목표를 가지고 교육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네 번에 걸친 「조선교육령」을 제정 및 공포하였다. 제1차 「조선교육령」[1911]에서는 보통교육[현 초등교육] 수업 연한 축소, 보통교육과 기술교육 위주의 학제 편성, 대학교육 불허 등을 실시하여 조선인의 교육 기회를 축소하며 우민화 교육을 시행하였다. 한편,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실업학교·사립학교에 관한 교육 규칙과 관제 등이 공포되면서 조선인 교육의 주도권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다.
제2차 「조선교육령」[1922]에서는 1910년대와 달리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동화정책과 유화정책을 실시하였다. 형식상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를 내세워 일본 학제를 조선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이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고, 고등보통학교는 4년에서 5년으로, 여자고등보통학교는 3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으며, 일부 조선인은 상급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실업·전문교육, 대학교육은 일본의 제도가 적용되었으며, 새로운 사범학교와 대학 설립에 가능해졌다. 또한, ‘3면 1교제’, ‘1면 1교제’가 실시되어 1910년대보다 많은 학교 설립이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조선어’ 교육이 필수로 실시되었다. 한편, 이러한 교육 정책과 제도에는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약화·말살하고 일본에 동화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등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서 식민지 통치 방식도 바꾸었다. 전시 동원 체제 하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을 본격화하였다. 민족 말살 정책은 제3차 「조선교육령」[1938]과 제4차 「조선교육령」[1943]에 잘 드러난다.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는 황국 신민화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의 보통학교는 심상소학교,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오늘날의 중학교, 고등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는 고등여학교로 변경되었다. 또한, 일본어, 일본사, 수신, 체육 등의 교과가 강화되었고, 조선어는 선택 과목이 되었다. 또한, 사립중학교의 설립을 불허하였다. 1941년에는 보통학교가 소학교로 변경되었고, 전문학교의 수업 연한도 축소되었다.
제4차 조선교육령은 전시 동원 체제 하에 조선의 학생들을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에 직접 참여시킨 정책이었다. ‘황국의 도에 따른 국민연성’이라는 교육 목표에 따라 교육을 군사 목적에 합치시키는 교육 체제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소학교는 국민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모든 교육 기관의 수업 연한이 축소되었다. 조선어와 조선역사 교육은 전면 금지되었다.
한편, 일본은 「사립학교령」, 「사립학교규칙」, 「서당규칙」 등을 제정 및 공포하여 학교 설립 및 운영 주체, 학교 운영 방법, 교원 임용 등 교육 전반에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여 조선인이 만든 학교를 폐교하거나 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법으로 조선의 민족 교육을 약화 및 말살시켰다.
일제 강점기 실시된 일련의 교육 정책과 제도는 경산 지역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교육 정책의 목표와 세부 정책이 잘 드러나는 학교 설립과 학제 측면에서 그러한 경향이 크게 나타났다.
1. 공립 초등교육 기관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학교 수 현황을 보면, 1911년에 공립보통학교 3개교, 1922년에 공립보통학교 4개교와 부설학교 1개교, 1923년에 공립보통학교 5개교와 부설학교 3개교, 1931년에 공립보통학교 8개교, 1934년에 공립보통학교 11개교와 간이학교 2개교, 1937년에 공립보통학교 11개교와 간이학교 4개교, 1940년에 소학교 15개교와 간이학교 6개교, 1943년에 국민학교 18개교와 간이학교 6개교가 있었다.
1910년대 설립된 공립 초등교육 기관은 3개교로, 경산공립보통학교[현 경산초등학교], 하양공립보통학교[현 하양초등학교], 자인공립보통학교[현 자인초등학교]이다. 1911년 7월 11일 경상북도 지역에서 설립 인가를 받은 초등교육 기관 15개교 가운데 가장 많은 3개교가 경산 지역에서 세워졌다. 자인공립보통학교는 자인군 상북면, 하양공립보통학교는 하양군 북면, 경산공립보통학교는 경산군 읍면에 있었다. 일본의 1910년대 초 공립 초등교육 기관 설립 방식은 '3면 1교제'였으며, 신설하기 보다는 애국계몽운동기에 만들어진 사립 학교를 공립 학교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초등교육 기관을 증설시켰다. 하양공립보통학교와 자인공립보통학교도 이 사례에 속한다.
1920년대에는 5개교로 용성공립보통학교[현 용성초등학교], 진량공립보통학교[현 진량초등학교], 압량공립보통학교[현 경산압량초등학교], 남산공립보통학교[현 남산초등학교], 안신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22년 용성공립보통학교, 진량공립보통학교, 1928년 압량공립보통학교, 남산공립보통학교, 1929년 안신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한편, 일본은 만성적인 학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부설학교나 간이학교를 설립하였다. 1922년 용성공립보통학교 부설 중화학교, 1923년 하양보통학교 부설 숭덕학교, 진량보통학교 부설 지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중 중화학교는 설립 2년 뒤에 폐교되었다.
1930년대에는 4개교로 와촌공립보통학교[현 와촌초등학교], 고산공립보통학교, 미촌공립보통학교, 남천공립보통학교[현 남천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31년 와촌공립보통학교, 고산공립보통학교, 미촌공립보통학교가, 1932년 남천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40년대에는 6개교로 하양남부국민학교, 진량동부국민학교[현 다문초등학교], 화촌서부국민학교, 압량남부공립국민학교[현 남성초등학교], 진량북부공립국민학교, 경산북부국민학교[현 임당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2. 사립 초등교육 기관
1910년대 조선총독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사립 초등교육 기관은 진덕학교, 도명학교, 계남학교, 계동학교, 숭덕학교로 총 5개교였다. 이 5개교는 모두 아담스(James E. Adams) 선교사가 설립한 것으로, 기독교 계열에서 설립한 학교이다. 사립경명학원은 1913년 정문국(鄭文國)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927년 9월에는 미국인 이시화(李時和)가 경영하고 있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원장은 정문국이었고 경비 곤란은 없는 상태이며 학생 수는 30여 명, 직원은 4명이었다고 한다.
[현대]
1. 해방 이후[미군정기]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그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초등·중등·고등교육 기관이 재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일제의 식민 교육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먼저, 학제는 이원제에서 일원제로 변경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간이학교, 보습학교, 강습과, 연습과 등이 폐지되었다. 수업 연한도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중등학교 6년, 사범학교 3년, 대학교 4년 등으로 정해졌다. 학기 제도는 3학기제가 폐지되고 1년이 2학기로 나누어져 운영되었다.
경산 지역에서도 초등학교와 중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초등교육 기관으로 1946년 와촌국민학교 계당분교, 1947년 서부국민학교가 개교하였다. 중등교육 기관으로는 1946년 4월 사립경산중학교와 1948년 자인농업초급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초등교육 기관 설립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중등교육 기관의 설립을 거의 봉쇄하였다. 이에 따라 경산 지역의 학생들은 인근의 대구 지역이나 근교의 중등교육 기관이 있는 곳으로 유학을 가야했으며,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경산중학교와 자인농업초급중학교의 설립은 경산 지역의 학생들에게 중등교육 기회를 확대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 1950년대
1950년대는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학제를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본격적으로 설립된 시기이다. 일제 강점기 각 면마다 국민학교가 설립되었지만, 중등교육은 상대적으로 확대되지 못하였던 경산 지역에서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새롭게 설립되었다. 비로소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지 않아도, 경산에서 초등교육부터 중등교육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초등교육 기관으로 1956년 4월 삼성국민학교가 신설되었고, 1958년 하양국민학교와 하양동부학교가 통합하였다. 1960년 와촌국민학교 계당분교가 계당초등학교로 승격하였다. 중학교는 1950년 자인농업초등중학교가 자인중학교로, 1951년 사립 경산중학교가 공립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1952년 하양중학교, 1953년 영남삼육중학교[경상남도 통영에서 이전], 1954년 10월 사립 진량중학교, 1954년 경산여자중학교, 1960년 자인중학교 용성분교가 설립되었다. 고등학교는 1955년 진량농업고등학교, 1959년 영남삼육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3. 1960년대
1960년대는 경산 지역에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학제를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모두 갖추어진 시기이다. 초등학교는 1962년 진량국민학교 진성분교가 설립되었고, 1966년 남천국민학교 금곡분교가 금곡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 중학교는 1969년 자인중학교 용성분교가 용성중학교로 분리 및 개교하였다. 고등학교는 1967년 경산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대학교는 1968년 영남대학교가 6개 단과대학[문리대, 공대, 법정대, 상경대, 약학대, 2부대학]의 35개 학과, 대학원 12개 학과로 출발하였다. 1969년 6월 현재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으로 이전하기 위해 경산시의 새 부지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영남대학교의 이전이 계기가 되어 경산시는 본격적으로 대학교육의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4. 1970년대
1970년대에는 교육이 국운을 좌우한다는 기치 아래 근대화와 경제 발전, 민족 주체성 확립을 추구하는 한국적 교육이 진전을 이루면서 초등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양적·질적 팽창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1970년과 1979년의 학교 및 학생 수를 비교해 보면 교육의 양적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학교의 경우 1970년 학교 수 32개교, 학생 수 3만 234명에서 1979년 학교 수 32개교[분교 2개교], 학생 수 2만 5,312명으로, 학교 수는 같으나 학생 수가 약 1만 명 정도 줄어들었다. 중학교의 경우, 1970년 학교 수 10개교, 학생 수 5,687명에서 1979년 학교 수 11개교, 학생 수 1만 1,533명으로, 1개 학교만 늘어났음에도 학생 수는 무려 2배 가량 증가하였다. 고등학교의 경우, 1970년 학교 수 4개교, 학생 수 607명에서 1979년 학교 수 8개교, 학생 수 4,918명으로, 학교 수가 2배로 증가하였으며 학생 수도 8배 이상 늘었다.
경산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학생 수는 10여 년만에 중학교는 2배, 고등학교는 무려 8.1배나 증가하였다. 이를 통해 1970년대 경제 성장과 교육의 중요성이 맞물리면서 경산 지역에서도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 수가 급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의 진학률은 1979년을 기준으로 45.6%에 불과하며 해를 거듭할 수록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들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중등교육 기관이 많이 밀접해 있던 대구 지역으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5. 1980년대
1980년대 경산 지역 교육은 초등교육 기관, 중등교육 기관, 고등교육 기관의 명암이 갈린 시기이다. 국민학교의 경우 학생 수 부족으로 학교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1980년 32개교[분교 2개교], 2만 5,576명에서 1989년 26개교[분교 2개교], 1만 3,520명으로 학생 수가 약 1만 2,000여 명 줄어들었다. 국민학교의 학생 수가 절반 가량 감소한 현상은 중등교육 기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학교도 1980년 11개교, 1만 1,713명에서 1989년 11개교, 6,378명으로, 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고등학교는 국민학교, 중학교처럼 매년 꾸준히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학생 수는 줄어들었다. 1980년 8개교, 4,918명에서 1986년에는 11개교, 1만 1,699명으로 급증하였지만, 1989년에는 11개교, 8,132명으로 줄어들었다.
학생 수 감소 현상은 경산 지역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에 따른 것이었다. 경산시는 대구광역시라는 대도시 인근에 있는 중소도시로, 도시화, 산업화, 농민층 분해 현상에 따른 이농 현상이 학생 수 변동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상급학교[고등교육 기관] 진학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대도시로 위장전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고등교육 기관은 급증하였다. 1968년 영남대학교가 이전해 온 이후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4년제 대학교와 2년제 전문대학이 이전 또는 설립되었다. 1989년 말에는 4년제 대학교 5개교, 4년제 대학학력인정학교 1개교, 전문대학 1개교로 총 6개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었다. 당시 설립된 학교는 대구한의과대학, 대구신학대학, 대구대학교, 효성여자대학교, 경북실업전문대학 등이다.
한편, 유치원 교육이 활성화되었다. 1981년부터 각 공립 국민학교에 부설유치원이 설치되면서 유치원 교육이 학교교육과 연계되었다.
6. 1990년대
1941년 이래로 사용되어 온 ‘국민학교’의 명칭이 1996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로 변경되면서, 일본 식민교육의 잔재를 완전히 지우고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이 각 학제의 명칭에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996년 경산 지역의 교육 현황을 보면, 유치원이 39개교[사립 17개교, 공립 22개교], 초등학교 25개교, 중학교 11개교, 고등학교 10개교, 전문대학 4개교, 대학교 6개교, 기타 대학[대구신학대학] 1개교였다. 1990년대는 경산 지역이 대구 지역의 베드타운(Bed Town)으로 자리잡고,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증한 시기이다. 인구가 줄어든 산간벽지의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주택 단지가 조성된 지역에 초등학교가 신설되면서, 1980년대까지 줄어들었던 학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등교육 기관이 198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여 대구·경북 지역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소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산시는 ‘학원의 도시’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7. 2020년 현재
2020년 9월 1일 현재 경산 지역에는 유치원 59개교,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12개교, 특수학교 1개교, 각종학교 1개교, 대학교 13개교로 총 123개교가 있다.
유치원은 단설 공립 유치원 2개교, 병설 공립 유치원 27개교, 사립 유치원 30개교이다.
초등학교는 모두 공립 학교이며, 31개교 중 1개교[햐양초등학교 화성분교장]는 분교장이다. 경산초등학교, 경산중앙초등학교, 임당초등학교, 경산동부초등학교, 남성초등학교, 장산초등학교, 경산서부초등학교, 정평초등학교, 사동초등학교, 성암초등학교, 옥곡초등학교, 평산초등학교, 삼성현초등학교, 하양초등학교, 하양초등학교 화성분교장, 하주초등학교, 청천초등학교, 금락초등학교, 자인초등학교, 용성초등학교, 진량초등학교, 진성초등학교, 다문초등학교, 부림초등학교, 봉황초등학교, 경산압량초등학교, 현흥초등학교, 남산초등학교, 와촌초등학교, 계당초등학교, 대동초등학교, 남천초등학교가 있다.
중학교는 공립 9개교, 사립 6개교가 있다. 공립 중학교에는 경산중학교, 자인중학교, 용성중학교, 경북체육중학교, 장산중학교, 사동중학교, 삼성현중학교, 신상중학교, 압량중학교가 있다. 사립 중학교에는 무학중학교, 진량중학교, 경산여자중학교, 자인여자중학교, 하양여자중학교, 문명중학교, 영남삼육중학교[교육부에서는 각종학교로 표시]가 있다.
고등학교는 공립 5개교, 사립 7개교가 있다. 공립 고등학교에는 경산고등학교, 경북체육고등학교, 경북기계금속고등학교, 경산과학고등학교, 사동고등학교가 있다. 사립 고등학교에는 진량고등학교, 무학고등학교, 문명고등학교, 영남삼육고등학교, 경산여자고등학교, 하양여자고등학교, 경산제일고등학교가 있다. 특수학교는 공립인 경산자인학교 1개교, 각종학교는 사립인 대경문화예술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대학교는 4년제 대학교 7개교, 전문대학 3개교, 사이버대학 3개교 총 13개교로 모두 사립 교육 기관이다. 2020년 현재 경상북도 지역 소재 대학교[사이버대학 제외] 39개 중 10개교가 경산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4년제 대학교에는 경일대학교, 대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신대학교, 영남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가 있다. 전문대학에는 대경대학교, 호산대학교, 영남외국어대학교가 있다. 사이버대학에는 대구사이버대학교, 영남사이버대학교, 한국복지사이버대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