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392
한자 驛院
영어공식명칭 Yeok-Won
이칭/별칭 역(驛),원(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위은숙

[정의]

조선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개설]

역(驛)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으로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도로망과 역참제가 더욱 발전 정비되어 22개의 역도(驛道)에 525개의 역참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 제도를 계승한 조선은 일부 역을 신설 및 개편하여 역도 및 역로망을 재편하였고, 이는 15세기 41역도 543역 체제로 정비되었다. 각 역도는 종6품의 찰방(察紡) 또는 종9품의 역승(驛丞)이 관장하였고, 각 역에는 역리(驛吏)·역졸(驛卒)·역노비(驛奴婢)가 두어졌다. 역참에는 역사를 갖추었고 중요 교통의 요충지에는 왕래인들에게 숙박과 편의를 제공하는 교통 취락, 즉 역촌이 형성되었다. 또한 공무여행자의 숙식이나 관료·귀족 등의 접대를 위한 역(驛)과 일반 여행자를 위한 원(院)도 설치하였다. 통상 역과 원을 합하여 역원이라 통칭하였다. 경산 지역의 역과 원은 옛 행정 구역인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역(驛)]

역은 각종 공무수행에 필요한 말과 공무수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옛 경산 지역에 설치된 역은 신녕현(新寧縣)의 장수역(長水驛)을 중심으로 하는 장수도(長水道)에 속해 있었다. 장수도 소속 역은 모두 소로(小路) 및 소역(小驛)으로 조선 시대 몇 차례 개편되었다. 그러나 개항 이후 우정국(郵政局)이 들어서고 우사(郵舍)가 신설되면서 기능을 잃게 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모두 폐지되었다.

경산현의 역으로는 현의 동쪽 12리에 있는 압량역(押梁驛)이 있다. 압량역은 동쪽으로 자인현의 산역(山驛), 남쪽으로 청도현의 성현역(省峴驛), 서쪽으로 대구부의 범어역(凡於驛), 북쪽으로 하양현의 화양역(華陽驛)과 연결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압량역에는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10필, 역리 23인, 역노(驛奴) 27구, 역비(驛婢) 15구가 있었다고 한다.

하양현에는 1396년(태조 5)에 처음 설치된 신역(新驛)이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에는 각각 현의 서쪽 7리와 3리 지점에 화양역이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신역이 화양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화양역은 동쪽으로 영천현의 청통역(淸通驛), 남쪽으로 자인현의 산역과 연결된다. 화양역에는 중마 2필, 복마 7필, 역리 15인, 역노 13구가 있었다.

자인현에는 현의 서쪽 8리에 산역이 있었는데, 1785년(정조 9)에 처음 설치되었다. 산역은 동쪽으로 경주의 아화역(阿火驛), 서쪽으로 경산의 압량역, 남쪽으로 청도의 성현역, 북쪽으로 하양의 화양역과 연결된다. 산역에는 중마 1필, 복마 1필, 역리 19인, 역노 2구, 역비 1구가 있었다.

[원(院)]

원은 일반 여행자를 위한 숙식 장소였다. 조선 전기에 많이 설치되었던 원은 점차 기능이 약화되면서 임진왜란 이후 대부분 사라졌고, 대신 주막이 설치되어 원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산 지역의 원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모두 사라졌고, 그 지명만이 남게 되었다.

경산현에는 현의 북쪽 18리에 건흥원(乾興院), 남쪽 20리에 신원(新院), 현의 북쪽 8리에 월연원(月淵院), 현의 서쪽 11리에 시지원(時知院), 현의 남쪽 1리에 광리원(廣理院)이 있었다. 하양현에는 현의 서남쪽 18리에 폭괘원(幅掛院), 현의 동쪽 5리에 시천원(匙川院)이 있었으며, 자인현에는 옛 구사부곡(仇史部曲)의 북쪽 3리에 다문촌원(多文村院)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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