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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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休堂 |
영어공식명칭 | Ilhyud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향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87년 - 일휴당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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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74년 - 일휴당,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오천동에서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일휴당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원소재지 | 일휴당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오천동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관리자 | 영남대학교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별당.
[개설]
일휴당(日休堂)은 금응협(琴應夾)이 세운 강학처이다. 금응협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협지(夾之), 호는 일휴당(日休堂)이다. ‘일휴당’이라는 당호는 금응협의 호에서 가져왔다.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로, 예안현[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오천리 봉화 금씨 입향조이다.
[위치]
일휴당은 영남대학교 민속촌 뒷산 능선에 있다. 쌍송정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을 향해 있다.
[변천]
일휴당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금응협이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16세기 중반 이후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에 폐허가 되었다가 1787년(정조 11) 금응협의 아들 금발(琴撥)이 오천리 북쪽 골짜기에 중건하고 별업(別業)으로 삼았다.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수몰을 피하고자 1974년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영남대학교 민속촌으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형태]
일휴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정면 3칸을 툇마루로 개방하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을 한 칸씩 두었다.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다. 마루는 기둥 안으로 우물마루[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서 ‘정(井)’자 모양으로 짠 마루]를 깔고, 다시 기둥 밖으로 내달아 일종의 헌(軒)이라 할 수 있는 특이한 공간을 만들었다. 전면 열과 양 측면 2개의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후면은 네모진 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뒷부분인 온돌방과 대청의 기단은 자연석 축대로 한 단계 높게 쌓은 반면, 건물의 앞부분인 툇마루의 기단은 한 단계 낮게 쌓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자연스레 앞 툇마루 밑에는 공간이 생겼으며, 그 공간에 짧은 기둥을 세워 마루를 받쳐 누마루 형식을 갖추었다.
[현황]
일휴당 내에는 1975년 3월에 금응협의 13대손 금홍섭(琴泓燮)이 쓴 「일휴당이건기(日休堂移建記)」를 비롯하여 「일휴당자경팔수(日休堂自警八首)」, 「일휴당(日休堂)」, 「수정재(守靜齋)」 등의 편액이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일휴당은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온돌방과 대청을 두고 있어 별당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