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부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391
한자 仇史部曲
영어공식명칭 Gusa Bugok
이칭/별칭 마진량현,마미량현,여량현,진량,자인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40년 - 여량현을 구사부곡으로 강등
개정 시기/일시 1018년 - 구사부곡을 경주부에 영속
폐지 시기/일시 1653년 - 구사부곡을 자인현에 합속

[정의]

고려 시대부터 1653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구사부곡(仇史部曲)은 원래 신라 때 장산군(獐山郡)의 영현이었던 여량현(餘粮縣)이었다. 고려 초 940년(태조 23)경 구사부곡으로 강등되었으며, 1658년(효종 9) 자인현(慈仁縣)에 합속되었다. 관할 구역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여량현이 고려 전기 구사부곡으로 강등된 시기와 연유를 보여주는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후삼국 통일 이후인 940년 태조가 전국 군현을 개편하였을 때 구사부곡으로 강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등 이유는 후삼국 정립기 후백제와 고려가 격전을 벌였을 때 후백제 견훤에 우호적인 지역이었던 탓에 부곡으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상도 경주부 건치연혁을 비롯하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주부 조, 『여지도서(輿地圖書)』 자인현 조, 『자인현읍지(慈仁縣邑誌)』 등에 구사부곡에 대한 연혁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구사부곡은 원래 마진량현(麻珍良縣)[마미량현(麻彌良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여량현으로 개칭하고 장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 940년경 구사부곡으로 강등되었으며, 1018년(현종 9) 경주부에 내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토성(土姓)으로 정(鄭), 석(石), 조(曹)씨가 있고, 내성(來姓)으로 장산군에서 온 전(全)씨가 있다.

[변천]

구사부곡은 1018년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주부에 영속되어 있었다. 『자인현읍지』에 따르면 경주부에 영속되어 있던 자인현이 1637년(인조 15) 복현(復縣)되자, 구사부곡 사람들은 인접한 자인현과 합속시켜 줄 것을 청원하였다. 결국 1653년(효종 4) 전우벽(田禹闢) 등이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져 자인현의 북면(北面)으로 개편되었다. 한편 『대동지지』에는 구사부곡이 1658년(효종 9) 자인현에 합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구사부곡은 신라 때까지 일반 영현이었던 지역이었다. 고려가 후삼국 통일 직후 지방 제도 개편시 여량현구사부곡으로 강등한 이유는 후삼국 통일 전쟁에서 왕건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고려 시대 부곡제 형성의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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