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72
한자 慶山慈仁端午祭
영어공식명칭 Gyeongsan Jain Danoje
이칭/별칭 한장군놀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류한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3월 16일연표보기 - 한장군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3월 12일 -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변경
문화재 해지 일시 2007년 3월 12일연표보기 - 한장군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 해제
의례 장소 경산자인단오제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지도보기
성격 무형문화재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축제.

[개설]

경산자인단오제(慶山慈仁端午祭)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축제로, 경산시 자인면 일대에 전해지는 ‘한장군 설화’에 그 유래를 둔다. 조선 시대에는 자인현 읍치를 배경으로 거행되던 읍치 제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단절되었다. 광복 이후 간헐적으로 지속되다가, 1960년대 한장군 유해 발굴과 여원무 복원이 계기가 되어 1969년 ‘한장군놀이’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1971년 ‘한장군놀이’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경산자인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에 기반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경산자인단오제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며, 경산자인단오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 확인된다. 『여지도서』에는 한장군(韓將軍)과 여원무(女圓舞)의 유래, 여원무에 대한 묘사, 단오(端午) 풍습 등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적(古跡) 여원무 한장군(韓將軍)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장군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어떤 이는 한종유(韓宗愈) 장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적을 막다가 중과부적으로 적을 막지 못하자, 여자들에게 강강수월래[女圓之舞] 춤을 추게 했다. 채색 종이를 잘라 꽃을 만들어서 빙 둘러 모자를 장식하고, 가장 자리에는 오색 긴 줄을 늘어뜨렸다. 두 명의 사내아이를 뽑아 그 둥근 모자를 머리에 써서 자신의 몸을 가리게 한 다음, 칼을 품은 채 부대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게 했다. 왜적 우두머리가 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틈에 적과의 거리가 다섯 걸음 사이로 좁혀지자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적을 공격하니, 적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지금까지 그 풍속이 남아 있어, 해마다 5월 5일 단오에는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 아래에서 그 춤을 본떠서 강강수월래를 추니, 후세 사람들이 장군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고 하겠다. 그런데 어느 시대 때 일어난 일인지는 살필 수가 없다.”

이후 19세기 들어 편찬된 경산의 각종 읍지류 및 문집 등에는 『여지도서』의 내용과 더불어 검흔석(劒痕石), 한매(韓妹), 한묘(韓廟), 진충묘(盡忠廟) 등 다양한 기사들이 수록되어있다. 조선 후기 간행된 여러 문헌에 경산자인단오제와 관련된 기사가 수록된 사실을 통해, 경산자인단오제의 정확한 유래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선 후기 자인현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거행되었던 의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진충묘 자리에 신사가 건립되고, 왜적 진압이라는 내용이 담긴 여원무의 연행이 금지되면서 1936년을 마지막으로 전승이 중단되었다. 광복 후 한묘제와 호장굿으로 구성되어 간헐적으로 개최되어오던 경산자인단오제는 1960년대 말 한장군과 관련된 유적 발굴이 계기가 되어 여원무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196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한장군놀이’로 참가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1971년 ‘한장군놀이’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 제례, 여원무, 자인팔광대, 큰 굿[자인단오굿], 호장굿[가장행렬]을 포함하여 ‘자인단오제’로 이름을 바꾸어 거행하였다. 이때부터 경산자인단오제는 지역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재정적인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 자인단오 보존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1997년 제23회 ‘자인단오-한장군놀이’ 부터 경산시가 축제의 주최가 되면서 시 차원의 축제로 격상되었다. 1999년부터 계정들소리, 원효대사 다례제 등의 프로그램이 추가되었고, 2001년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지역민속축제로 선정되었다. 2002년에는 씨름대회를 유치하기도 하였다.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을 변경하고 거듭 발전하여 더욱 풍성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한장군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은 진충묘(盡忠廟)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경산자인의계정숲 안에 있다. 한장군이 죽은 후 주민들이 도천산 서쪽 기슭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신당 자리이다. 1765년(영조 41) 자인현감 정충언(鄭忠彦)이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를 철거하고 신사를 세웠는데, 해방 이후 자인면 북사리에 있던 한당을 이건하여 현재의 진충묘가 되었다. 매년 단오제 때 여기에서 한장군 제사를 모신다.

진충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상도자인현일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당의 규모는 1칸 반이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벽에 장군 옷을 비롯하여 여러 옷이 걸려있고, 제상에는 지화 등을 비롯하여 ‘증병조판서한장군 신위(贈兵曹判書韓將軍 神位)’와 ‘한씨낭자 신위(韓氏娘子 神位)’라고 적힌 위패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조선 시대·근대 편찬된 읍지를 보면 한장군에 대한 추숭이 확대되어 진충묘 외에도 한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다. 1932년 간행된 『자인현읍지』에는 “하동면의 육동(六洞)·송림동(松林洞), 하북면 마라동(麻羅洞)에 또한 사당을 세우고 예를 올린다.”고 한다. 2020년 현재 마곡리 한당, 대종리 한당, 가척리 한당, 원당리 한당 등에서도 제사를 지낸다.

[절차]

경산자인단오제는 크게 한장군대제, 여원무, 호장굿[가장행렬], 자인팔광대, 자인단오굿 등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한장군대제의 준비는 매년 음력 단오가 되기 약 3주 전부터 제사에 쓰일 신주를 빚으며 시작된다. 음력 5월 2~3일경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보고 음력 5월 4일 제수를 준비한다. 음력 5월 5일 단옷날 진충묘에서 한장군대제를 봉행한다.

단옷날 오전 9시경 헌관 및 제 집사들은 옷을 갈아입고 진충묘로 이동한다. 유교식 홀기에 따라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순서로 제사를 모신다. 한장군대제에서는 영신사(迎神詞)를 읽는데, 1765년 자인현감 정충언이 동생 정충빈을 시켜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진충묘에서 제사를 마치면 한장군묘소에 참배를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자인단오 보존회관으로 돌아와 함께 음복한다.

여원무는 한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때 춘 춤에서 유래하며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춤이다. 장군을 맡은 이는 높이가 3m인 화관을 쓰고 춤을 춘다. 여원무는 예술적인 면에서 독자적인 소재와 가락을 지니고 있다.

호장굿은 단옷날 아침 한장군대제를 지내러 가는 제관들의 행렬로 가장행렬, 호장장군행렬 등 여러 이칭이 있다. 1969년 발간된 자료에서 밝힌 가장행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장산사명기(獐山司命旗)-2. 청룡기(靑龍旗)-3. 백호기(白虎旗)-4. 령기(令旗)-5. 나대유풍기(羅代有風旗)-6. 농기(農旗)-7. 여원화관-8. 무부(巫夫)-9. 희굉이-10. 여장동남-11. 감사뚝-12. 군노(軍奴)-13. 사령(使令)-14. 포장(砲將)-15. 무녀(巫女)-16. 포군(砲軍)-17. 영장(營將)-18. 기생전배(妓生前陪)-19. 중군(中軍)-20. 삼재비-21. 전배통인(前陪通引)-22. 일산 및 파초선(日傘 및 芭蕉扇)-23. 도원수(都元手)-24. 인배통인(印陪通引)-25. 수배(隨陪)

자인팔광대는 주민들에 의해 복원된 가면극이다. 183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한장군이 누이와 한께 왜적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여원무를 추고 배우 잡희를 열었다는 기사로 미루어 지금의 형태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부터 연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인팔광대는 1985년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1986년 한장군 문화제에서 복원공연을 하였고, 198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단오제를 구성하는 다섯 마당 중 하나가 되었다.

자인단오굿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경상도읍지』 「여원무(女圓舞)」조에 “…또 배우들의 온갖 놀이를 열고 장구치며 쇠를 올렸다. 戶長은 사모관대를 갖추어 (韓將軍의 神祠에) 매년 제사를 지내 끊이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이상한 재변이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것을 遺風과 민속으로 삼아 전해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 단오굿이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인단오굿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되었다가 1950년대 잠시 행해졌다. 이후 북사리의 한당을 경산자인의계정숲 내로 옮겨오면서 당주 일을 맡았던 김경분[1929년생, 女巫]이 그때부터 1987년까지 대구에서 다른 보살들을 불러 굿을 하였다. 1988년부터 1990년 사이에는 한장군놀이보존회에서 외지의 무당에게 굿을 맡겼으나 다른 지역의 굿을 행하여 지적을 받았고, 1991년 김경분에게 단오굿의 판 짜는 일을 일임하였다. 이러한 자인단오굿은 전야제 형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오다가 경비 문제와 굿을 연행하는 무당의 맥이 끊긴 문제로 인하여 전승이 단절되었다. 이후 1999년 제24회 자인단오제부터 본격적으로 복원하여 지금까지 연행되어오고 있다.

[축문]

2020년 한장군대제에서 사용된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경자오월을미삭초오일기해(維歲次庚子五月乙未朔初五日己亥)/경산자인단오보존회장최재해(慶山慈仁端午保存會長崔在海)/감소고우(敢昭告于)/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將軍)/한공복이(韓公伏以)/숭공외열(崇公嵬烈)/위국저향(爲國著鄕)/입사타령(立祠妥靈)/몰세불망(沒世不忘)/여원신무(女圓神舞)/유모상즉(遺模尙則)/속자단오(屬慈端午)/생예자성(牲醴粢盛)/서품식진(庶品式陳)/상천(常薦)/상(尙)/향(饗)

[부대 행사]

2019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는 보인농악, 자인 계정들소리, 고성오광대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공연과 각종 축제 퍼레이드, 음악회 등의 부대행사가 진행되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의 유행으로 한장군대제만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현황]

한장군은 예로부터 자인 지역 사람들에게 고을 수호신으로 추앙받던 인물로, 고을 수호신에 대한 추숭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경산자인단오제는 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를 중심으로 보전·전승을 위한 학술연구와 홍보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지자체와 시민사회, 지역 대학에서도 경산자인단오제의 전승에 뜻을 모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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