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171
한자 婚禮
이칭/별칭 결혼식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유신

[정의]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혼인을 할 때 치르는 의례와 절차.

[개설]

혼례(婚禮)는 성인이 된 두 사람이 부부로서의 성적, 경제적 결합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인정받는 모든 의례와 절차를 말한다. 혼례는 부부관계의 합법성을 획득하는 과정인 동시에 양가의 결속과 인척관계의 사회적 확대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사회 통념이 변화함에 따라 혼례의 형식이 현대식으로 치러지는 경향을 보인다. 경산 지역의 혼례 역시 주로 현대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연원 및 기록]

혼례는 상고시대 제례 때 먹고 마시는 풍속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는 기장밥을 짓고 고기도 굽고 우물도 만들어서 물을 떠 마셨다. 또한, 흙으로 북을 빚고 북채도 만들어 천지신과 조상신을 공경하는 의례를 행하였는데 이러한 풍속이 혼례 풍속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제사 중심의 예(禮) 관념이 부여되면서 중요한 사회원리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의 예에 대한 기록으로는 고구려의 『예기(禮記)』, 백제가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 등을 일본에 전해 준 기록, 화랑들이 예 공부를 맹세한 신라 시대 금석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등이 전해진다. 고려 말에 안향(安珦)[1243~1306]이 원나라에서 주자의 저술을 가져와 가정의례를 시작하였고, 조선 세종 대에는 예 교육 실천을 강조하였다. 17세기에 유교적 생활가치가 가정·친족·지역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혼례의 형식도 갖춰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혼례의 형식과 절차는 『예기(禮記)』, 『가례(家禮)』,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을 따른다.

[혼례의 절차]

1. 의혼(議婚)

‘의혼’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신랑집과 신부집이 서로 혼사를 의논하는 절차이다. 남녀가 혼인할 연령이 되면 중매인을 통해 혼담이 오가게 되는데, 이때 혼인 당사자의 의견보다는 양가 집안 부모들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주자학이 도입된 이후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예법에 의해 가부장적인 가족질서체계를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개 과거의 혼인은 양가 부모와 중매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중매인은 나이가 지긋하며 양가의 집안을 잘 알거나 한쪽 집안을 잘 아는 사람으로, 보통 ‘중신애비’, ‘중신애미’라 불렸다. 혼인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상대방의 가문이었고, 이에 더해 집안의 재산과 경제적인 측면 등을 중요하게 보았다.

2. 납채(納采)와 납폐(納幣)

‘납채’는 뜻이 맞아 청혼서와 사주단자, 허혼서와 연길단자 등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신랑 측에서 신부 측으로 신랑의 출생 연월일시를 적은 사주단자를 보내면, 신부집에서는 혼인할 날짜를 택한다. 택일[날짜를 선택하는것]은 ‘연길(涓吉)’ 또는 ‘날받이’라고도 하는데, 삼복이 낀 달, 농번기, 짝수의 달, 양가 부모가 혼인한 달, 6월과 12월 등은 ‘썩은 달’이라고 하여 피한다. 택일을 한 후 신부집에서는 연길지(涓吉紙)와 편지를 써서 신랑집에 보낸다. 연길지에는 전안(奠雁) 일시와 납폐 일시를 쓴다. 택일을 받은 집에서는 혼례일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랑은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않는다.

‘납폐’는 납채를 한 다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서신과 폐물을 보내는 과정이며, 혼인이 성립됨을 의미한다. 신랑집에서는 함진아비에게 예장함(禮狀函)을 지워 신부집에 보내며, 함 안에는 혼례에 필요한 옷감, 예장지, 신부의 화장품 등을 넣는다. 이때, 신랑집의 형편에 따라서 알맞게 보낸다. 납폐는 혼인일 당일에 먼저 행하거나 혼인일 하루 전날 행하기도 한다.

3. 혼인

의혼, 납채, 납폐의 절차가 끝나고 며칠 뒤에는 혼인[신행]을 치른다.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서는 납폐가 끝난 후 수 개월 뒤에 혼인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신랑은 하인 및 집안 사람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가며, 이 때에는 갓과 도포차림을 한다. 하인은 혼수함을 지고 가기 때문에 ‘혼수애비’라고도 부른다. 혼인 시간이 가까워지면 신랑 측 사람들이 신부집으로 들어간다. 신부집에서는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병풍을 두르고, 상을 차린다.

전통적인 혼례에서는 집례자(執禮者)가 홀기(笏記)에 적힌 순서에 따라 예식을 진행하므로 주례를 두지 않았다. 집례자의 안내에 따라 전안례(奠鴈禮)와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巹禮)를 진행한다. 대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함께 방으로 들어가 상견례를 한 다음, 신랑은 두루마기로 갈아입고 사랑채에 머물고 있는 상객에게 가서 혼례가 끝났음을 알린다. 혼례를 올린 후 3~5일 후에 신랑은 본가로 돌아온다[재행]. 신부는 3일 혹은 5일, 가문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수 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신랑이 있는 시댁으로 간다.

[금구동 혼례의 사례]

과거 경산시 금구동[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금구리]에서는 신랑이 초행길을 떠나 다른 마을의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며칠 뒤 돌아오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는 신랑집 마당에서 혼례를 치르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다. 금구동에서 나고 자란 주민 김정구[1964년생]의 기억에 따르면, 1970년대 초중반 금구동에서는 오전 10시 즈음 신랑집 마당에서 혼례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한문을 읽을 줄 알고, 사람들의 신임을 얻은 어른 한 사람이 혼례의 집례자가 되어 진행했는데, 이때 장소가 신부집이 아닌 신랑집 마당이라는 것만 빼면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 등의 혼례식 절차는 동일하였다. 혼례 2~3일 전에 신부집에서 사람을 보내어 마을의 집집마다 떡을 돌렸다고 한다. 이를 ‘물물떡’이라고 불렀는데, 인절미와 송편 등 여러 종류의 떡을 성인 두 주먹 정도 크기로 뭉쳐 신문지에 싸서 짚을 묶은 형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물물떡을 받은 후에 어느 집에서 보낸 것인지 확인하고, 혼례에 참석했다고 한다. 물물떡을 돌리는 풍습은 오늘날 결혼식 전에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문화와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혼례의 변화]

1980년대 이후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사람보다 예식장에서 결혼 예식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 예식은 신랑 또는 신부의 지인이 사회자가 되어 행사 전반을 진행한다. 일반적인 식순은 하객맞이-사회자의 개식선언-화촉점화-신랑 신부 입장-혼인 서약-예물교환-성혼선언-주례사-축가-행진-기념촬영 등이지만, 웨딩 업체와 결혼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예식의 순서는 변화될 수 있다. 결혼식 분위기는 엄숙하고 진지한 경우부터 유쾌하고 재미있는 경우까지 상황에 따라 다양하며, 최근에는 소수의 가족 및 지인만을 초대하여 결혼식을 올리는 ‘작은 결혼식[Small wedding]’도 많아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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