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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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권동 |
[정의]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개설]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나 문자를 조합하여 표현한 예술 및 작품을 일컫는다. 경산의 문학은 크게 전통 시대의 고전 문학과 근현대의 현대 문학으로 살펴 볼 수 있다. 경산 지역은 원효·설총·일연으로 일컬어지는 삼성현(三聖賢)의 고장으로 전통 시대에는 이들 명현들을 중심으로 문학 활동이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경산 지역의 성장과 맞물려 여류 문학가 백신애를 비롯해 저명한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문학 단체가 결성되어 지역 내에서 창작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전통 시대 경산의 문학]
경산의 전통 시대 문학은 오랜 역사적 유산과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617년(진평왕 39) 압량군 불지촌(弗地村)에서 세습관리(世襲官吏)인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로 원효(元曉)가 출생하였다. 원효는 대승화쟁(大乘和諍)의 사상가이자, 대소승(大小乘)을 비롯하여 경(經)·율(律)·논(論) 삼장에 대한 100여 부 240권의 방대한 저술을 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 사상적 영향은 인도·중국·일본에 두루 미쳤다. 그런 원효의 아들이 바로 설총(薛聰)이다.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더불어 신라 삼대문장으로 손꼽히는 설총은 구경(九經)에 밝았으며, 특히 단편 산문인 「화왕계(花王戒)」를 남겼다. 또한 이두(吏讀)를 집대성한 국학자(國學者)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설총은 원효와 신라 요석공주(遙石公主)와 사이에서 출생하여 경주 출신일 가능성 높다. 그러나 경산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설총을 경산의 유곡(油谷)과 여천(麗川)에서 출생 및 성장한 것으로 주장하며, 그의 학문 정신을 적극적으로 계승해 왔다.
고려 시대 경산 지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남긴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선사(一然禪師)이다. 일연이 남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비교해 야사적(野史的)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는 많은 불교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향가(鄕歌)를 비롯해 한시체로 된 여러 편의 시가를 수록하고 있어, 고·중세 문학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 시대 이후 경산 지역의 문학은 선비들이 남긴 시문집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및 조선 시대에 문집을 남긴 인사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 출현 시기는 비교적 늦은 편이다. 그런 가운데 19세기에 활동했던 경산 출신의 문학가로는 하양(河陽)의 유학자이자 시조작가인 지덕붕(池德鵬)[1804~1872]이 주목된다. 5권 2책으로 구성된 지덕붕의 『상산집(商山集)』에는 모두 13조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어, 이 무렵 경산 지역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 볼 수 있게 해준다.
[근현대 경산의 문학]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경산 지역에서는 1920년대 항쟁 작가로 활동한 여류 소설가 백신애(白信愛)[1908~1939]가 배출되었다. 이어 1930년대에는 여류 소설가 장덕조(張德祚)[1914~2003]와 아동문학가 김성도(金聖道)[1914~1987]가 일제 치하 조선 문단의 중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한국 현대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해방 직후인 1950년대에는 전상렬(全尙烈)[1923~2000], 정석모(鄭夕茅)[1922~1987], 김윤식(金潤植)[1927~1996], 윤혜승(尹惠昇)[1928~2000], 지준모(池浚模)[1925~2007] 등과 같은 경산 출신 시인들의 활동이 두르러지게 나타났다. 한편, 서석달(徐錫達)[1928~1992]은 195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돌각담」이란 작품으로 수석 입선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서석달은 문인 생활 35여 년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남긴 향토 출신 작가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 문단시대부터 활동한 백신애·장덕조·김성도의 뒤를 이은 지역 출신 문인이다.
김윤식은 1950년대 말부터 35년 간, 각고의 추적과 작품수집 및 연구로 1986년 장편의 「백신애연구(白信愛硏究)」라는 논문을 『경산문학』 2집에 발표하였고, 이어 1987년 작품집 『꺼래이』를 조선일보사에서 발간하였다. 장덕조는 6·25전쟁 당시 최초의 여성 종군작가로서 역사소설을 많이 집필하였는데, 일제 말기인 1944년 「새로운 군상(群像)」을 비롯하여, 「행로」 등의 친일 작품을 다수 발표한 이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아동문학계를 영도하기도 했던 김성도는 동요인 「어린음악대」를 작곡·작사하였다. 이에 1987년 김성도의 모교인 하양초등학교 교정에 전국 문인의 모금으로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1960년대 이후 정치·경제적 안정 속에 경산 지역에서는 여러 경향의 문인이 배출되었다. 먼저 1960년대에는 와촌 출신의 도광의(都光義)가 196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부문으로 당선하였고, 남천 출신의 이동하(李東河)는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소설 부문에 당선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남천 출신의 최학이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하였고, 1978년에는 자인 울옥 출신인 최기호(崔基灝)가 『현대시학』에 시조로 등단하였다. 이어 1979년에는 고산[지금은 대구광역시 수성구로 편입] 출신의 제갈태일(諸葛太一)이 『시조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1980년대에는 하양 출신의 구활(具活)이 1984년 『현대문학』에 수필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어 1986년에는 진량 다문리 출신의 박동정(朴棟楨)이 시집 『봄을 불러세우고』를 발간했다. 1987년에는 자인 출신의 김석주(金錫周)가 시집 『조선고추』를 펴냈고, 1989년에는 중방동 출신의 추영희가 『우리문학』의 추천을 마치고, 시집 『그렇더라도 당신 때문에 바람이 불고 있다』를 발간했다. 그리고 용성 덕천리 출신의 김상연(金相淵)도 『우리문학』에 추천을 받았다.
이렇듯 1960년대 이후 경산 출신의 문학인이 많이 배출되어 중앙 또는 지역 문단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김윤식과 같은 작가는 반독재 작품 활동과 함께 농민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수차례 필화를 겪었지만, 김윤식은 직필로 일관하였다. 특히 2·28 대구 학생의거를 소재로 한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지어, 지난 2019년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편, 1994년에는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가 설립되어 『경산문학』을 발간하는 등 지역에서 꾸준히 문학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