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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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社稷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권동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98년 10월 20일 - 「경산의 사직제」『경산문학』제13집에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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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간행 시기/일시 | 1998년 10월 20일 - 「경산의 사직제」『경산문학』제13집에 수록, 간행 |
배경 지역 | 경산 사직단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공원로 59[인흥리 250] |
성격 | 현대 수필 |
작가 | 김약수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사직단 복원 이전의 역사를 기술한 수필.
[개설]
사직단(社稷壇)은 나라의 신인 사(社)와 오곡신(五穀神)인 직(稷)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인 사직제를 지내는 단(壇)이다. 사직이 종묘와 다른 점은 종묘가 한 나라에 오직 한 곳에만 설치될 수 있는 데 비하여, 사직은 도성은 물론 지방의 행정 단위마다 설치하여 왕을 대신해서 지방 수령이 제례를 지낸다는 점이다. 사직에 대한 현대의 상징적 의미를 찾는다면, 도성의 사직은 국가를 가리키고 지방의 사직은 지방자치단체를 의미한다.
[내용]
경산의 사직단은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경산현읍지(慶山縣邑誌)』에 의하면 “경산 서쪽 7리에 있다[在縣西七里]”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었다. 1910년 이래 허물어진 상태에서 방치, 훼손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1985년 2월경부터 당시 김윤식[작고]·안태중[작고] 씨들이 중심이 되어 사직제를 부활시키기로 하고, 그해 10월 26일 오후 7시 경산군민 체육대회 전야제로 경산시 경북체육중고등학교 가설무대에서 처음 봉행하였다. 1986년부터는 경산시 중방동 구교육청 자리에 가건물을 지어서 경산 지역 유림이 주관하고 경산군수가 초헌관이 되어 사직제를 매년 봉행했으며, 경산읍이 경산시로 승격된 1989년 이래와 경산시·군이 통합된 1996년부터는 경산시장이 초헌관으로 봉행해오고 있다.
1994년 이후 경산 성암산 시민헌장비 앞에서 경산시 제4회 종합문화행사의 하나로 사직제를 봉행했으며, 1997년에는 같은 장소 가설무대를 만들어 경산시민종합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경산유림이 중심되어 사직제를 올렸다. 그러다가 성암산에 제단을 설치하는 등 장소를 옮겨가며 사직제를 봉행하다가 2018년 8월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내에 사직단 공사를 시작해 제사를 올리는 정사각형의 제단, 제단을 두르고 있는 담장, 담장 사방에는 홍살문, 신을 모시는 공간인 신실, 제관들의 환복실 등을 조성하며 명실상부한 사직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특징]
「경산의 사직제」는 2018년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내에 ‘경산 사직단’을 복원하기 이전에, 경산 사직제의 역사와 문화재 복원의 당위성을 밝힌 글이다.
[의의와 평가]
「경산의 사직제」는 사직제의 의미를 확인하고 경산 사직제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경산 사직단’의 문화재 복원의 단초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