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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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鐻 |
영어공식명칭 | Kim Geo |
이칭/별칭 | 가화(可和),학포(鶴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64년 - 김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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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김거 임진왜란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김거 팔공산 회맹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김거 화왕산성 방어 |
몰년 시기/일시 | 1604년 - 김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4년 - 임진 창의 제공 하양사적비 건립 |
묘소 | 김거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안심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참봉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개설]
김거(金鐻)[1564~1604]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경림(黃慶霖)[1566~1629]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하양현(河陽縣)을 방어하였다.
[가계]
김거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가화(可和), 호는 학포(鶴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횡성현감(橫城縣監)을 지낸 김영서(金永瑞),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김세위(金世緯)이다. 아버지는 음직으로 참봉(參奉)에 오른 김성수(金聲壽), 어머니는 참봉 황헌(黃憲)의 딸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부인은 통진현감(通津縣監)을 지낸 박재호(朴在浩)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활동 사항]
김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외사촌이었던 황경림과 함께 하양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6년(선조 29) 팔공산 회맹(八公山會盟)에 하양 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1552~1617]를 도와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다. 이러한 군공으로 현릉 참봉(顯陵參奉)에 천거되었다.
[묘소]
김거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안심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거는 사후 승지(承旨)에 증직되었다. 1974년에는 하양 출신 의병장 8인을 기리는 임진창의제공하양사적비(壬辰倡義諸公河陽事跡碑)[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133]가 세워졌다. 이 비석은 ‘하양팔의사비(河陽八義士碑)’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김거를 비롯해 신해(申海)·황경림(黃慶霖)·허대윤(許大胤)·박능정(朴能精)·허경윤(許景胤)·박붕(朴鵬)·허응길(許應吉)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화왕산성에서 함께 입성했던 허응길(許應吉)은 김거의 활동을 기리고자 증시(贈詩)를 지었는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말 세우니 봄이었고 창 꺾이니 가을인데 / 수양(睢陽)의 절개가 또 정암(鼎巖)에 머무네 / 비록 백우(白羽)를 보존하여 지내온 역사를 구원했으나 / 아! 애석 하도다 붉은 깃발 일찍이 거두지 못함이 / 일편단심 죽음으로 지켰으니 / 5천 의사(義士) 어찌 짝이 없으리 / 그대를 위로하노니 계획한 것은 넓고도 분명하나 / 무도한 오랑캐 해주(海州)를 더럽히네"라 하였다. 또한 이안눌(李安訥)[1571~1637]은 “각간(角干)이 천년 후에 / 이 사람과 도모하여 잇게 하였네 / 동쪽 모퉁이라 한탄하지 말게 / 기양(岐陽)이 한(漢)나라에 이르렀다네”